조선조 마지막 태자 영친왕 이은의 태자비는 지난해 작고한 일본인 이방자여사라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러나 태자비로 간택됐으나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에 희생돼 파혼당한 민갑완여사(68년작고 당시73세)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영친왕 서거 20주기인 1일 민씨의 유족들은 일본 왕족인 이방자여사 대신 민씨를 「정신적인 조선조의 왕비」라고 주장하고 있다.민씨는 1897년 10월 조선 최초의 주영대사를 지낸 민영돈의 5남매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민씨는 10살되던 1907년 2월 동갑내기인 황태자 이은의 비로 간택됐다.
같은해 7월 순종이 즉위하고 왕세자 이은이 황태자에 책봉됨에 따라 민씨는 장차의 국모자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영광은 잠깐이 었고 긴 불행의 터널이 나타났다.
이토히로부미가 다섯달뒤인 12월5일 이은을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보내고 말았다.

순종은 왕세자가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간 보름뒤 민씨집에 사신을 보내 『시국이 시끄러워 옛예식을 행할수 없으나 길일을 택해 예물을 전달하니 이를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란다』며 혼인의 징표인 순금쌍가락지를 보내 사실상 세자비로 받아들였다.
민씨는 이후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으로 파혼하도록 갖은 협박과 회유끝에 10년만인 1918년 총독부에 의해 강제파혼당하고 반지를 빼앗겼다.

일제는 고종 의문의 급서 1년후인 1920년 4월 이은과 일본왕실의 이방자여사(일명「마사코」)와 정략결혼을 강행했다.
민씨는 그후 영친왕의 귀국을 고대하며 일제의 결혼공작을 거부하고 「왕세자의 약혼녀」로서 정절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민씨는 총독부의 강압에 견디다못해 1920년 6월 외숙의 주선으로 일경의 감시를 피해 미복차림으로 동생 천행과 함께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민씨는 영국인버스회사의 감독으로 근무하던 외숙을 통해 독립군에게 자금을 건네주는등 독립운동을 간접지원했다.
김구 김규식박사등 임정요인들은 망명정부의 자긍심의 상징으로 민씨를 마지막 국모로서 예우했고 1927년에는 상해에 머물려던 영친왕을 납치,민씨와 혼약을 성사시키려다 밀고로 무산되기도 했다.
민씨는 해방후 『부덕만 지켜왔을 뿐 조국독립을 위해 한일이 없다』며 귀국을 미루다 이시영박사의 종용을 받아들여 고국에 돌아왔다.

그녀는 한때 「민갑완 사회교육사업후원회」를 만들어 육영사업에 투신했으나 6ㆍ25발발로 중단했다.
민씨는 해방직후부터 스러지는 조선조말의 숙명적인 자신의 삶을 일기체로 기록,62년 「백년한」이라는 제호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녀는 영친왕의 서거에 따라 못다이룬 사랑의 한을품고 68년 식도암증세로 타계,73년 비운의 생을 마쳤다.

민씨의 5남매중 순종임금의 계비 순정효황후의 삼촌에 출가한 언니 학완씨를 비롯,남동생 천행 만행씨등이 타계하고 여동생 만순씨(80)가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만순씨는 『언니가 궁중이 아니라 일본총독부에 의해 강제파혼당했기때문에 사실상 조선조의 마지막 왕비는 민갑완』이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최근 노대통령 방일에 앞서 논란이 되는 재일교포3세의 법적지위와 관련,『위정자들이 무관심했던 우리의 역사의 그늘을 국민들에게 일깨우는 작업이 절실하다』며 「우리역사찾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