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문화재단
 
제목  덕혜옹주 영화와 기상천외의 놀라운 상궁유적<북촌 안동별궁 유적의 긴급 특별보호>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6-09-05 17:45:40 조회수  1633


덕혜옹주 영화와 기상천외의 놀라운 상궁유적

<북촌 안동별궁 유적의 긴급 특별보호>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미국인들은 온갖 말썽을 피우다가도, 국가 연주나 국기 게양을 할 때는 부동자세로 경건해진다는 얘기가 이상하게 들리는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모두가 일제강점기의 혹심했던 후유증 때문이다.

급기야 우리나라에는 요즘 국뽕 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국뽕은 애국심 히로뽕이란 뜻이다. 마약을 먹은 듯 이성을 상실한 애국주의를 말한다. 하지만 국뽕은 요즘 들어서 현대판 당파싸움을 하면서 불거진 아주 편향된 용어이다.

 

왜적들은 우리를 침략하며 당시 애국선열들이 국수(國粹) 수호운동을 펼치자, 국수주의가 나쁜 용어라고 악선전했다. 그것이 현재도 그대로 남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것은 일제침략에 맞선 애국자들의 항일전쟁 용어였다. 김치, 된장 등 민족의 순수성을 잃지 말아야 함은 자명한 진리이다.

왜놈들이 한국인들의 애국심을 없애려고 역공격하기 위해 만든 역선전 용어가 국수주의다. 그래서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것이 나쁜 것이라도 되는 듯 오해가 생긴 것이다. 국수주의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언어도단의 용어이다.

국뽕도 국수주의와 같이 악용될 수 있는 잘못된 신조어가 확실하다.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용어 선택도 현명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매국노와 연결될 수 있는, 국뽕 같은 지각없는 용어는 삼가야 옳다. 애국에는 당파, 여야가 다를 수 없다. (임진왜란 등에서 당파싸움으로 애국을 외면한 전철을 벌써 잊었는가?)

 

애국은 어떤 경우에도 조롱의 대상일 수 없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에는 그러했다. 일제강점기를 답습하는 것은 부당하며, 애국을 오도하고 매국을 조장함은 간교했던 일제침략의 잔재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일각에는 친일 풍조가 강하고, 왜놈들이 조센징 부락문화라고 격하했던 후유증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아직도 천황을 비방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한황실만 습관적으로 비난하는 당혹스런 모습이 많다. 덕혜옹주 영화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그런 고질병이 원색적으로 불거졌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친일 잔재인 줄을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중독증세가 심하다.)

 

덕혜옹주 영화는 우리들에게 까맣게 잊히어졌던 애국심을 재생시킨 큰 공로를 남겼다. 덕혜옹주 영화에는 지극한 충성심을 가진 복순이와 함께 여러 상궁들의 충군애국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에게는 덕혜옹주 보다 복순이가 더 인상적일 정도이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는 여러 애국자들은 물론이고, 강제 징용된 국민들이나 일반인들의 성실한 애국 활동이 이어진다.

한 마디로 덕혜옹주 영화는 순도 100%의 애국영화가 분명하다. 덕혜옹주 영화가 성공을 거둔 것은 최초로 충군애국심의 재발견을 현실화시킨 데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에 분노하고 있던 잠재의식의 폭발 현상이었다. 많은 관객들의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임금님 정치체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충족시켜 다수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은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우리를 침략한 왜국에는 천황이 존재하는데, 왜 우리 임금님만 사라졌단 말인가? 그 통탄, 회한, 분노가 덕혜옹주 영화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천황 만세를 부르는 기념식장의 일장기를 겨냥하여 내던진 폭탄에,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끼며 구름 같이 관객들이 몰려 간 것이다. 본 영화는 천황과 일장기를 정면으로 응징 타격하는 최초의 영화라고 하겠다.)

 

서울의 관광 중심지인 인사동 네거리를 건너면 풍문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이곳은 원래 유서 깊은 안동별궁 유적지 이다. 학교 안에는 아직도 문화재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풍문여고 뒷담 길을 돌아서 가면, 풍문여고 본관 바로 뒤에 기절초풍할 희한한 곳이 있다. 흡사 쪽방 촌 벌집과도 같다. 그런데 이곳은 서울에 온전하게 남은 희귀한 상궁들의 옛집이며, 앞으로 긴급히 특별보호가 요망된다.

 

덕혜옹주 영화에 나오듯이 상궁들은 임금님을 위해 헌신적인 충성을 바친 집단이었다. 따라서 일제침략 이후, 특히 1945년 이후에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벌집 같은 이곳을, 각 상궁들에게 개별 분양을 해준 것이 현재 그대로 남은 것이다. 원래 안동별궁은 여러 상궁이 살면서 황실을 돕는 특별 보조궁궐이기에 그렇기도 했다.

상궁들은 그 외에도 운현궁에서 계속 살았던가, 보문동에 있는 비구니 절인 미타사 등이나, 멀리 해인사, 수덕사의 여승이 되었던가 하며 거의 다 황실에 대한 마지막 충절을 지켰다. 이승만의 황실탄압기를 거치며 각박한 세태 속에서 잊히어지고 말았으나, 그들 다수는 결코 대한황실을 저버리지 않았다.

 

요즘 많은 관광객이 몰려다니는 인사동 바로 옆이 의친왕의 사동궁터이고, 풍문여고 터가 바로 대한황실의 마지막을 장식한 안동별궁인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안동별궁이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곳이고, 예전에 황후마마가 가례식을 올리기 위해 머물던 곳임을 알고나 있는지 세월이 무심할 따름이다.

(풍문여고에서는 거교적으로 매년 가례식 재현행사를 멋지게 실시하며, 예전의 찬란했던 황실문화를 되살리려는 갸륵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 유일의 문화 행사를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거행하는 풍문여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문화관광부가 적극 지원하며, 온 세계 관광객이 몰려오는 국가 차원의 문화행사로 화려하게 발전되길 바란다. 황실문화재단 재단소식 102 참조)

 

그런데 특히 일제탄압을 받으면서 모든 재산과 집을 빼앗기고, 금치산선고 까지 당하며 일본에 끌려가 장기간의 고초를 겪은 의친왕이 귀국하여, 마지막 눈을 감은 참담한 곳이 이 벌집 쪽방이라면 경악할 것이다. 모든 것을 강제로 빼앗긴 희대의 애국자 의친왕은 최후에는 흡사 빈털터리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의친왕이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금치산선고를 당하면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던 1930612일은 사실상 전국이 계엄령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10년 전의 대동단 망명사건 때에는 사동궁 기둥마다 순사가 둘러싸고 의친왕을 겁박했지만 최고 황족의 법도는 지켜졌다. 그렇지만 1930년에는 기마경찰과 총검으로 무장한 헌병 경찰이 새까맣게 몰려와 사동궁을 몇 겹으로 둘러싸고 의친왕의 모든 것을 강탈해 갔다. 말울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공식적 발표는 물론 증거가 거의 남겨지지 않았다. 다만 수덕사에 공민왕 거문고가 남겨진 것이 대표적 증거물이다. 그 후 의친왕은 사실상 거지가 되는 것이다. 이때에 강탈해간 모든 재산은 일본에서 이제라도 정식으로 반환 배상하고, 최악의 전범인 천황의 석고대죄도 필수적이다. 의친왕과 대한황실을 침략한 천황은 국제 강도범, 살인범, 패륜 흉악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국 천황이 거지 신세가 되어 온갖 탄압을 받다가 쪽방 구석에서 참담하게 죽었고, 모든 황족들이 노숙자 거지로 전락했다고 역지사지로 생각이나 해보라!)

 

더구나 안동별궁 쪽방은 현재 대한황실의 큰 어른으로서, 대한황실을 상징하는 인물인 이석 황손의 청소년기 애환이 깊게 서린 뜻 깊은 곳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이 쪽방은 일제침략기 황실탄압을 극복하고, 600여 년 전 누란의 위기에 처했던 나라를 되살린 태조 이성계 장군의 뜻을 오늘날에 재현한 이석 황손의 꿈이 자란 곳이다. 이석 황손은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탄압기를 거치며 거의 소멸상태로 짓눌려 있던 대한황실을, 재도약 시키도록 만든 큰 위업을 이 쪽방에서부터 싹을 틔웠다. 안동별궁은 대한황실 항일전쟁의 최고 성지가 확실하다.

(의친왕이 극도로 비참했으니 그 후손들의 삶도 사실상 거지와 다름없게 되었다. 현재 전주에 머무는 이석 황손의 생애가 거의 노숙자 같은 삶이 이어진 까닭은, 의친왕이 처절하게 항일 독립전쟁을 전개한 탓이며, 그렇게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고 어린 나이로 방치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석 황손이 경동 중학교 3학년일 때에 의친왕이 작고했으니, 이석 황손은 당연히 학창시절에 이 쪽방에서도 많이 살았으며 동가식서가숙의 떠돌이 생활고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석 황손이 현재 치열하게 현대판 항일전쟁을 전개함은, 처절한 항일애국자였던 의친왕의 정통 아들로서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김좌진 장군의 화신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로서 왜놈들을 주먹으로 평정한 바와 같다고나 할까? 다만 장군의 아들은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로 나올 만큼 유명한데,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손은 너무나 의친왕이 탄압에 탄압을 받아, 흡사 아버지 없이 홀로 자수성가형 독립운동을 펼친 것 같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석 황손은 장군의 아들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다. 2의 태조 이성계 장군과 같이 넓고 큰 길을 개창하는 삶을 뚜벅뚜벅 걸어 왔다. 장군의 아들 차원이 아니라 임금님의 아들의 길을 걸었고, 더 나아가 제2의 창업을 여는 새로운 태조 할아버지의 영광스러운 길을 줄기차게 걸어왔다.)

 

의친왕은 마지막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마지막 숨을 거둘 장소조차 없도록 일제침략은 악랄하고 잔혹했다. 항일 독립전쟁 당시 최고 애국자 의친왕이 처절하게 숨진 곳이 바로 이 쪽방 구석이라면, 결코 방치하거나 소홀하게 다룰 장소일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황실탄압의 대표적 상징 장소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촌 관광지 핵심 포인트인 이곳이, 대한황실 항일전쟁사의 대미를 처절하게 장식하며 의친왕이 비참하게 작고한 곳이고, 이석 황손이 현대판 대한황실 항일전쟁의 꿈을 키운 곳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많은 관광객이 파도처럼 몰려다니는 이곳이, 대한황실 근현대사의 핵심 역사의 땅으로서, “황실성지임을 모든 국민이 깨닫는 그 날! 새 역사가 펼쳐지는 그날은 기필코 올 것이다! 그 날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한없이 밝고 굵고 우렁차리라! 그날의 태양은 더욱 더 휘황찬란하게 떠오르리라!]

 

<얼마나 일제 침략이 잔악했으면 항일전쟁기 최고의 애국자이며 대한황실의 최고 어른이신 분이, 그토록 중상모략을 당하고 이런 음침한 쪽방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인가? 하지만 거의 최근까지도 몽매한 이 나라에서는 의친왕이 구제 불능한 술주정뱅이라고만 알려져 왔다. 사실상 왜놈들 시대가 이어져 왔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아니 덕혜옹주 영화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가 다시 시작이라도 된 듯 어둠의 논리가 횡행했다.>

 

<사동궁 옛터나 풍문여고 뒷담 길 어딘가에 의친왕의 동상을 세울 수 없다면, 최소한 기념 표지석이라도 세워야겠다. 인생을 걸고 항일전쟁을 벌이다가 천하에 없을 술주정꾼으로 몰리며, 극심한 탄압을 당한 위대한 의친왕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왜적들이 만들어 놓은 친일풍조 그대로가 많아, 항일애국에 모든 것을 바치고 빈털터리가 된 의친왕을 철저히 잊고 탄압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차라리 복순이 동상이라도 세운다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가 있을까? 그리고 안국동 네거리 어딘가에 만고역적 매국노 한창수의 무릎 꿇린 동상이나 복순이에게 매 맞는 동상이라도 있어야 옳지 않겠는가?>

 

황실문화재단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notice&doc_num=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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