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거대한 경륜

세계 학계가 인정하는 현존 최고의 세계지도는 1402년에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가 검상관 이회에게 명하여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로서, 역대 여러 나라의 수도를 하나로 합해 표기한 지도라는 뜻이다. 그것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프라마우로 지도보다 57년이나 앞선 경이로운 존재이다.

태조 이성계 장군이 임금님으로 등극하신 1392년에서 10년이 경과했고, 태종이 등극한 1400년에서 2년째가 되던 해에, 이런 기념비적인 세계지도가 제작되었음은 당시를 근본부터 재해석하게 만든다.

특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아프리카까지 포괄하여 당시 알려진 세계를 모두 담고 있다. 더구나 100여개의 유럽지명과 사하라 사막, 나일강, 빅토리아 호, 킬리만자로 등 35개의 아프리카 땅이름까지 나와 놀라움을 준다. 당시까지의 세계지도로는 동서양을 망라하여 가장 탁월한 세계적 보물이며, 인류사에 남을 놀라운 작품이다.

다만 너무나 아쉽게도, 이 지도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특급국보에 해당하겠으나 일본의 용곡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수없이 약탈 노략질을 한 일본이기에 너무나 많은 것이 일본에 있는데, 이것도 임진왜란 때에 가토 기요마사가 훔쳐간 장물이다.

이 지도는 조선 개국집단의 거대한 꿈과 경륜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 또한 태조, 정종, 태종, 세종 임금님 시기의 자신만만했던 세계적 시야와 포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를 중국과 함께 중앙에 그려 놓아 세계적 긍지와 자존감을 당당히 표출하고 있음이다. 지금부터 600년 전의 조상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대륙과 해양을 향해 뻗어나가는 거시적 의지가 생생히 담겨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조선시대를 개창한 리더쉽은 원래가 다국적 조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조선시대를 낳은 이성계 장군은 이미 조상 때부터 인류사상 최초의 세계국가였던 몽골족과 깊은 교류를 쌓았고, 이성계 장군의 친족, 측근들은 여진족은 물론이고 위구르, 돌궐을 포함한 다양한 국제인맥을 포용하고 있었음이다.

태조의 리더십은 당시로서는 사실상 지구차원(global)적인 토대를 가진 다국적 다문화 군대였고 시야가 넓은 지도세력이었다. 조선국가를 만든 개국세력들은 당시 일본을 매우 격이 낮은 나라로서 가소로운 존재로 보았고, 중국과는 천하를 양분하는 정도의 당당함을 가졌었다고 생각된다. 북만주 벌판을 포효하며 달리던 진취적 기상으로서 거시적 시야를 가졌던 태조, 정종, 태종, 세종 임금님 때였기에, 삼국시대 이후 유일하게 북방영토를 경략하여 평안도, 함경도의 드넓은 국토를 포용했다.

일제침략 이후에 우리의 눈이 왜곡되어, 이 시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옳다. 삼국시대 이후 만주땅 고토회복은 오직 이 때뿐이었다. 좁은 반도지역만이 아니라 만주벌 전체를 좁은 듯이 종횡무진 하였고, 머나먼 고대사 이후에 유일하게 폭발하는 국력발산의 획기적인 시기였다고 까지 생각된다. 정말 영웅적인 시대였기에 놀라운 세계지도가 탄생한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오늘날 우리민족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필두로, 세계차원의 FTA경제영역을 만들며, 지구차원의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초광역 DNA를 가진 민족임을 600년 전에 이미 인증해주는 증거물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된 우리나라를 이미 600년 전에 예견했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그린 때에 이미 세계적 위상을 그렇게 가졌었다고 까지 증언한다고 보인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할 당시 참찬이었던 권근이 쓴 발문은 사뭇 통쾌하게 느껴진다. 일제침략이 만들었던 먹구름의 잔재가 확 가시는 기쁨이다.

「천하는 지극히 넓다. 안으로는 중국에서 부터 밖으로는 사해까지 몇 천 만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중략)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중략) 이 지도의 완성을 기쁘게 바라본다.」

그 당시에 이성계 장군이 서울의 삼각산 백운대에 올라서 읊은 당당한 애국시가 있다. 거기에 담긴 이성계 장군의 국제정치적 생각은 중국 본토 전체를 차지하겠다는 당찬 것이었으니, 요즘으로 말하면 세계제패를 뜻하는 것과도 같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든 큰 뜻은 그처럼 거대한 조선개국 리더쉽이었지만, 그 후 수양대군의 패륜찬탈로 국력이 위축되자 이성계 장군이 말달리던 옛터에서 나타난 누루하치에 의해 청나라로 현실화되며 드넓은 땅 전체가 만주세력의 식민지가 된다. 아니 이성계 장군 후예들의 땅이 된다.

특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금나라 수도와 여진의 남경을 확실하게 우대하여 표시하는 등 여진족에 대해 각별히 동족의식을 나타내고 있으니, 누루하치의 청나라 건국은 이성계 리더쉽의 연장선에서 이성계 장군의 꿈을 현실화시킨 것이 확실하다고까지 생각된다.

백운대에 올라(登白雲峯)

손 당겨 댕댕이넝쿨 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引手攀蘿上碧峰)

한 암자가 흰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네(一庵高臥白雲中)

만약 눈에 들어오는 세상 전체가 우리땅이 된다면(若將眼界爲吾土)

초나라 월나라 강남을 어찌 마다 하겠는가(楚越江南豈不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