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선임 두고 경제·심리적 압박 받은 것으로 추정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대한제국 광무(고종)황제의 손자 이구 황태손이 양자를 들이는 것과 관련해 경제·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돌연사 당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5년 일본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구 황태손은 몸이 시커멓게 변한 상태에서 발견됐는데, 이를 놓고 약물에 의한 죽음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당시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황태손의 사망 관련 인터폴(Interpol) 보고 따르면 황태손 시체가 발견된 후 일본은 한국에 알리지 않고 유해와 내장을 표백하고 방부제 처리했다. 시신을 부검한 일본은 ‘심장마비’로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해 황손들은 심장마비설로 이구 황태손의 죽음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의학계에서는 “검게 변한 사체는 약물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 황태손의 죽음에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제국 황실 연구를 20여 년간 해온 안천 교수는 “황태손의 후계자 결정 과정에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양자 선임 요구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종약원은 황태손에게 자손이 없으면 황실의 맥이 끊긴다며 양아들을 들일 것을 줄곧 강요했다. 압박을 받은 상태에서 황태손은 본의 아니게 집밖으로 쫓겨났고, 객지에서 돌연사했다”며 말했다. 다시 말해 양자 선임에 대한 경제·심리적 압박을 피해 객지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5년 8월 SBS의 보도에 따르면 이구 황태손은 생활비를 7개월간 받지 못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종약원을 통해 황태손에게 ‘품위 유지’를 목적으로 달마다 생활비를 지원했다. 종약원은 자신들의 뜻대로 황태손이 양자 선임을 하지 않자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살고 있던 맨션의 관리비를 내지 못한 황태손은 결국 쫓겨났고, 자신이 태어났던 곳의 인근 호텔에서 지내다 의문사를 당했다.

그렇다면 왜 황태손은 종약원에서 추천한 양자를 호적에 들이지 않았을까. 안 교수는 “황태손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종약원 이사장이 호텔로 찾아가 황태손의 약정서를 받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양자 문제와 관련해 ‘2~3년 뒤 결정’이라고 적혀 있다”며 “이는 조선황실 양자가 아니라 ‘아리다 양자’가 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종약원 측이 추대한 황태손 후계자로 이원(이상협) 황사손이 있다. 그는 의친왕의 10남 이갑 황손의 아들이다. 안 교수는 “이원 씨는 이구 황태손의 후처 아리다 여사(일본국적)에게 양자로 입적됐다”며 “입적 당시 이구 황태손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법적으로 봐도 황태손이 아닌 아리다 여사의 후계자로 이름을 올린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