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문화재단
 
제목  황손 이석의 삶 그리고 그의생각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2-09-26 17:46:44 조회수  2496

“皇孫 12남9녀 대부분 비참한 삶… 난 ‘상징적 황실’ 의무감으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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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室역사 강의로 ‘제2 인생’ 마지막 황손 이석 요즘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  여전히 겨울의 냉기를 안은 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데도, ‘황손’ 이석씨는 느린 발걸음으로 조심스럽게 한발짝 한발짝 내디뎠다. ‘왕족의 풍모가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어릴 때부터 황실의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얼굴 빛에서부터 그런 게 있다”고 활짝 웃었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  1969년 월남전 ‘비둘기부대’란 이름에서 따온 노래 ‘비둘기집’. 이석씨는 이 노래로 스타 가수가 됐다.
황실 가문의 자손을 만나는 일은 조심스럽고도 불편했다. 만나서 건네는 인사부터 평범한 시민이 누리는 일상의 대화까지 모든 게 ‘차이의 벽’을 느낄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마지막 황손’이라 불리는 이석(71)씨를 만난 지난 9일 서울교육대학교 교정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꽃 내음이 퍼질 듯 말 듯한 애매한 분위기 속으로 두루마기를 입은 그가 천천히 걸어왔다. 70세가 넘은 ‘노인’의 체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한 허리를 자랑하는 그는 알랭 들롱 못지않은 준수한 외모도 모자라 인자한 미소, 선비 같은 말투까지 마주 앉은 이를 시종 긴장시켰다. 그를 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칭호’에 관한 문제였다. ‘왕손? 왕자? 황손?…’ “어떻게 불러드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잔잔한 미소만 날릴 뿐이었다.


“2003년 전주로 내려갔을 때, 절 소개하면 사람들이 ‘왕손’이나 ‘왕자’라고 불렀어요. 보통 ‘비둘기 왕자’라고 많이 부르더라고요, 하하. 제가 ‘비둘기집’이란 노래로 한때 유명세를 탔으니까요. 2006년 전주의 한 시의원이 얘기해서 ‘황실문화재단’이 만들어졌는데, 그때 ‘황손’이라고 많이들 불렀습니다. 어느 시골에 가면 ‘이석 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주대(교양국사)에서 객원교수를 해서 ‘교수’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죠. 제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호칭은 ‘황손’이에요.”

그의 인생을 읊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한 사람이 겪기엔 너무 많은 일을 함축적으로 경험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황실에서 태어나 막노동 등 밑바닥 삶까지 두루 훑은 그의 삶은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거짓말 같은 진실의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갈 곳 없이 이리저리 배회한 메뚜기 같은 인생에서 이제는 지자체가 마려해 준 터전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황손 가수’ 이석씨의 인생을 따라가봤다.

―요즘 전주 한옥마을에서 9년째 거주하고 계십니다.

“전주 이씨 고향에 안착한 셈이죠. 제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역설한 것 중 하나가 ‘우리 국민은 서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서로 칭찬하고 양보하는 가치들이었죠. 9년간 전주 시민과 함께 하면서 이 같은 가치의 가능성을 찾았어요. 우리 국민은 원래 착한 백성들이어서 남을 헐뜯고 살지 않는데, 격변의 시대를 거치고 산업 문명이 들이닥치면서 조금씩 변한 거예요. 남이 슬프면 같이 눈물 흘릴 줄 알고, 기쁘면 함께 웃는 백성들의 본모습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봤고요. 제가 ‘황실 문화’를 되찾아 국민에게 그런 교육을 하자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전국을 돌며 ‘황실 역사’ 강의를 하시는 겁니까.

“1990년대 초반부터 공무원 연수부터 친목회, 라이언스 클럽까지 강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또 2003년부터 전주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죠. 강의를 시작하면서 저는 ‘의무적으로 산다’고 다짐했어요. 역사 의식을 올바로 심어주는 일이죠. 제가 태어난 것부터 상궁으로부터 받은 대접, 왕실의 엄한 법도, 다른 이에게 인사하는 법까지 모든 예절을 우선적으로 강의해요. 그리고 조선 왕조에 대한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법도 알려주죠.”

―요즘 세대들에겐 ‘따분한 강의’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지방 곳곳에서 만난 나이드신 분들은 종종 울기도 해요. 이렇게 멋있는 조선왕조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에 감명받은 것이죠. 그리고 ‘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잊고 살았을까’ 한탄하기도 하고, 저보고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가십시오’라고 종용하는 이들도 있어요. 반면에 젊은 대학생들은 졸기 일쑤예요. ‘교수님 저 바쁜데…’하면서 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이석씨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의친왕의 13남9녀 중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황제의 마지막 자손으로 ‘궁궐 생활’을 익혔지만,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황실은 그 권위를 잃고 거지 신세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이승만 정부가 황실재산관리법을 만들어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황실의 권력을 경계했어요. 그래도 구황실사무총국에서 윤 대비(순종의 부인)에게 아주 적게나마 경제적 지원을 했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황실은 어느 정도 집단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10·26 이후 헌병들이 칠궁(七宮·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에 들이닥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됐어요. 그때 저도 미국으로 갔죠.”

황실에서 쫓겨난 황실의 후손들은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이석씨 형님들은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 탓에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대부분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궁궐 안팎의 삶에 극심한 괴리감을 느꼈겠군요.

“위의 형님들이 대부분 정신병자처럼 돌아가셨어요. 간혹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면 형님들은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다들 울며 지내다가 죽음을 맞으셨어요.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형님(이경길)은 장가도 못가고 최후까지 비참한 삶을 살다 가셨죠.”

이석씨는 형님들 얘기를 하다, 13명 아들 중 한 명은 데옥시리보핵산(DNA) 검사를 통해 친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최근 호적정리를 끝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이로써 지금까지 알려진 13명의 남자 황실 후손은 최종 12명으로 남아 있게 됐다. 이 중 생존한 아들 3명은 외국에서, 딸 2명은 한국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 남양 홍씨와 황실에서 쫓겨나간 뒤의 삶은 어땠나요.

“어머니는 서울 신당동 등지에서 국수를 팔아 절 키웠어요. 궁에서 사셨던 분인데 장사하는 법을 알았겠어요? 돈도 모르고 법도 몰랐죠. 그렇게 하루를 연명하다 나중에 신경성 위장병으로 52세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땐 ‘아기 마마’라고 부르고, 커서는 ‘왕자 마마’라고 하셨죠. 한 번도 제게 경어를 거른 적이 없었어요. 월남전에서 돌아온 제 품 안에서 돌아가실 때도 ‘죽을 때 상궁 옷을 입고 죽어야 하는데,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들 허무한 삶을 살았는데, 이석 황손만 노래를 통해 삶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형님들처럼 제 앞에도 허무한 인생의 그림자가 서 있었죠. 그럴 때마다 소리를 내서 화를 달래곤 했어요. 어머니가 국수를 팔던 시절인 경동고 3년때 제 밑으로 4명의 동생을 부양하려면 뭔가 일을 해야 했어요. 그때 서울 종로 2가 ‘뉴월드’ 음악감상실에서 크리스마스 노래자랑이란 걸 했는데, 거기서 ‘베사메 무초’를 불러 1등을 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냇킹 콜이나 팻 분 같은 팝 가수의 노래를 다 따라부르니까, 미 8군과 워커힐 호텔에서도 제의가 들어와 노래도 하고 사회도 봤어요.”

그가 연예계 활동을 할 때 ‘황실 후손’이라는 배경이 도움이 된 적도 많았다. 밴드 리더가 늘 ‘이석씨는 왕자’라며 거들어줬고, 덕분에 융숭한 대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한번은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이 ‘이석 전하가 누구인가’ 물어보고는 90도로 절하더니 공손하게 모신 적도 있었고, 한국의 어느 식당에 갔을 땐 사람들이 알아보고 넙죽 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전라도 장성을 한번 방문했더니, 의친왕의 친필 붓글씨를 갖고 계신 할아버지가 큰절을 한 게 기억에 남는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절 안하고 그러면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웃었다. 하지만 연예계 활동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연예계 활동을 우연히 TV로 지켜보던 윤 대비가 “나라가 망하니, 황실의 후손이 광대가 됐다”며 진노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연예 활동에 심한 회의를 느꼈다.

―어떤 회의를 느꼈나요.

“처음 미 8군에 갔을 때는 이 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개념이 강했으니까, 별다른 창피함이 없었어요. 그런데 윤 대비께서 그런 말을 하고 나니까 심한 괴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천한 광대 같은 노래를 불러서 이 나라 황실에 모욕을 준 것이 아닌가, 다시 황실이 서더라도 절 대접하지 않고 낙인 찍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그래서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가수 활동을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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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이후 결혼 실패, 9번의 자살 시도, 미국에서의 막노동, 찜질방 생활 등 고통의 나날을 보내셨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은 나름 역사 인식이 있어 살 곳도 마련해주고 생활비도 보태주고 했는데, 10·26 이후 황실 가족은 신군부에 의해 엉겁결에 길거리로 쫓겨나게 됐어요. 그래서 이 나라에 다시 안 오겠다고 다짐하고 미국으로 떠났죠. 결혼은 돈 없는 왕손과는 못 살겠다고 해서 결국 실패로 끝났고, 미국에서의 삶은 노래로 벌 수 있는 돈이 막노동보다 못해 허드렛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잔디깎기부터 빌딩 청소, 페인트 칠 등 안해본 일이 없었죠. 형님들처럼 저도 다 잊고 가려고 했는데, 그게 제 맘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그가 황실 자손으로서 겪어야 했던 지난한 삶 중 가장 참기 힘들었던 순간은 ‘없어서 무시당할 때’였다. 어디 가서 지인들과 술을 먹다가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황실 자손’의 형편을 장난삼아 용돈을 건네는 경우가 그랬다.

그는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냥 뒤로 돌아 한숨 쉬고 그 자리를 뜬다”며 “이 나라에서 알아주지 않는 왕손이라도 이런 식의 대접을 받으면 더 서글프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황실문화재단을 통해 상징적인 황실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잃어버린 역사 의식이야말로 자기 민족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된 역사가 조선왕조이고 불과 70, 80년 전까지 존재했던 게 우리 황실이에요. 제가 핏줄로 엄연히 살아 있는데, 그 역사를 쉽게 잊는다면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마지막 황손’의 입이 원망과 희망의 어느 지점에서 강하게 떨리고 있었다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12&doc_num=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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