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에서 이우 왕자 역을 맡은 배우 고수.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고수가 연기한 이우 왕자(1912~1945)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 왕자는 영화에서 일본에 있는 항일 조선인 세력을 이끄는, 강인한 리더로 나온다.
고모인 덕혜옹주에게도 독립의식을 불어넣는다.
일본 황실의 보호 아래 평안한 삶에만 신경쓰는 형 이건과 달리, 이우 왕자는 영친왕 부부와 덕혜옹주에게 조선 왕실이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며, 그들에게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의 망명을 권유한다.(영친왕이 상하이로의 망명을 시도했다는 내용은 영화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허구다.)
영화에서 이우 왕자의 분량은 덕혜옹주나 김장한(박해일) 등에 비해 많진 않다.
하지만 수려한 외모와 카리스마,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지닌 인물로 묘사되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우 왕자의 실제 삶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영화에 그려진 이우 왕자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그는 정말로 독립운동에 관여했을까 등등.
조선 왕실의 꽃미남 왕자로 불렸던 이우.
일단 이우 왕자의 실제 모습과, 영화 속 모습은 상당히 비슷하다. 이우 왕자는 요즘 아이돌 스타에 비견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 조선왕실의 꽃미남 왕자라고도 불린다.
인기 아이돌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와 닮은 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덕혜옹주'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 또한 "이우 왕자 역을 소화할 배우로 잘생긴 배우 고수가 떠올랐다. 왕자에 대한 판타지가 모두에게 있는데 그 느낌이 정말 완벽하게 어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우 왕자는 실제로 독립운동에 관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이우 왕자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된 뒤 군사기밀을 독립군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설'(說)일 뿐이다.
의친왕의 13남 9녀 중 11남인 이석(75) 황실문화재단 총재는 최근 중앙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형 이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상당히 민족의식이 강하신 분이에요. 일본 군인이 됐어도 일본말을 안 하시려고 했대요. 부대 내에서도 정신병자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일본말을 안 하시고 그러셨대요. 만주에서 독립군 말을 몰래 기르고 있었는데, 일본이 전세가 이상하니까 일본으로 전출을 시켰어요."
이우 왕자가 독립군 말을 기르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는 내용은 근거가 없지만, 민족의식이 강했다는 점은 역사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는 항일 의지가 강했던 아버지 의친왕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영친왕의 이복형인 의친왕은 1919년 11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탈출하려고 압록강 건너 안동(지금의 단동)까지 갔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영화 '덕혜옹주'에 등장하는 영친왕 망명 작전은 의친왕의 망명 기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것이다.
이우 왕자는 조선 왕실 내에서 드물게 민족의식이 강하고, 일제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우 왕자와 함께 공부했던 조선인, 일본인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떤 일에서도 기를 쓰고 일본인을 이기려고 했다.
자신은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화가 나면 조선말을 써서, 육군사관학교의 일본인 동기들이 못 알아듣기도 했으며, 술자리에서 조선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배우자 또한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을 고집했다. 일본 황족과 결혼시키려는 일제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친일파 박영효의 손녀인 박찬주와 결혼했다.
내선 일체를 강조하게 위해 조선 왕실과 일본 황족과의 결합을 꾀하던 일제의 압박 속에서 조선인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친일파 자손과의 결혼이라는 타협책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일 합병 이후 일본인과 결혼하지 않은 황손은 이우 왕자가 유일하다.
친일파 박영효의 손녀 박찬주와 결혼한 이우 왕자.
일제의 우산 하에서 순응하며 살았던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일본인으로 귀화해 1991년 일본에서 삶을 마감했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이건이 상하이 망명을 주장하는 이우에 맞서, "임시정부에 가봐야 여기만큼 우리를 대우해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이건의 실제 면모와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을 졸업한 이우 왕자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 1942년 중국 산시성으로 전출돼 일본군 정보 참모장교로 근무했다.
이 시기에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팔로군과 조선인 의용대를 지원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조선에 머물 때, 농민들을 착취하는 일본군 고위 장교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데 이 또한 근거가 없다.
이우 왕자는 조선 왕족으로서의 기개와 민족의식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평가다.
일본의 패망을 예감한 이우 왕자는 조선에 머물기를 원했지만, 일제는 그에게 일본 본토를 사수하라며, 히로시마 전출 명령을 내렸다. 1945년 6월의 일이다.
그리고 그의 첫 출근일이었던 8월 6일 아침. 비극적인 운명이 그를 덮쳤다. 자동차 대신 말을 타고 출근하던 그는 그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폭심지로부터 710m 떨어진 곳에서 피폭당한 그는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지만 살아있었다.
근처 해군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식을 회복했지만, 이내 극심한 피폭 증상을 보이며 8월 7일 숨을 거뒀다.
조선왕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우 왕자가 원자폭탄에 의해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그의 유해가 조선으로 옮겨진 8월 8일 안타까운 또 하나의 죽음이 있었다.
이우 왕자의 신임을 받으며,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일본인 부관 요시나리 히로무가 권총 자살한 것이다.
피폭당한 날 아침 이우 왕자가 말을 타고 출근한 것은 엉덩이에 부스럼이 생긴 부관을 배려한 조치였다.
그는 부관을 자동차에 태워보내고, 자신은 말을 타고 출근했다. 부관은 자기 때문에 이우 왕자가 숨졌다고 자책하며, 자신의 머리에 총부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경성에서 이우 왕자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8월 15일, 라디오에선 일왕의 항복 방송이 흘러나왔다.
당시 서른 셋이었던 이우 왕자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일제는 가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우 왕자를 일본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한국산업기술대 서영희 교수는 "이우 왕자의 행적은 역사학의 대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며 "영화에서 이우 왕자가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묘사된 건, 너무 앞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우 왕자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설이 나오는 건, 민족의식이 강했던 그가 아버지 의친왕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면 어땠을까 라는 대중의 바람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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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왕자가 독립운동을 했건 안했건, 그의 삶이 덕혜옹주 못지않게 드라마틱하고 기구한 건 사실이다.
그의 삶을 다룬 소설 '왕자 이우'도 출간된 바 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이우 왕자가 관객들과 만날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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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왕자 영화를 준비중인 한 영화감독은 "조선 왕실의 기개 넘치는 꽃미남 왕자에서 원자폭탄의 희생자가 되기까지, 이우 왕자의 삶은 덕혜옹주의 삶보다 더 기구하면서 비극적이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