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문화재단
 
제목  이구 황손의 생애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2-10-30 19:55:29 조회수  507

 

「迷兒」된「半白의 왕자」
17년만의 환국
조선시대 마지막 황세손 李玖의 인생

【대한민국의 뿌리 조선왕조의 마지막 적통(嫡統)이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영구 귀국한다. 그의 실루엣은 다름아닌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의 투영이다】

    李洪九, 李會昌 그리고 李賢宰, 李海龜.

    이들 유명인사 4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관심사에 따라 그 대답은 각인각색일 것이다.

    앞의 두 인사에게만 국한한다면 그나마 대답이 쉬워질지 모른다. 차기 대권 대표주자로 귀가 따갑 도록들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의 두 인물이 가세하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해답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떠올리곤 하는 정치 문제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바로 성씨가 같고 문중이 같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全州 李氏. 5백여 년 조선의 왕을 배출해온 문중 사람들이다.

    이들이 11월 25일 김포공항에서 자리를 함께 한다. 영구 귀국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李玖씨(65)를 영접하는 문중 대표의 자격으로다. 그리고 앞으로 이 조선왕조의 마지막 적통(嫡統)이 조국에 무난히 정착할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하는 임시 조직체를 공동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이들에게 부여된 역할이다.

    이름하여 「皇世孫 玖 總裁 還國 준비위원회」.

    이들 네 이씨는 이 위원회에서 좌장격인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李範俊, 李善中, 李應百, 李丙昊씨 등 9명이 고문직을, 종친회의 총본부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의 李桓儀이사장이 위원장으로 실무총책을 맡고 있다. 그 아래로 부위원장단을 위시해 자문위원, 운영위원, 상임위원진, 그리고 재계담당, 정부 국회담당 등 5개 위원회가 조직돼 있다.

   「황세손 李玖 총재」는 누구인가. 그는 왜 지금 숱한 종친들의 마중을 받으며 환국하는가.

    황세손이면 황세손이지 뒤에 총재라는 직함을 어정쩡하게 갖다붙인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대한민 국 전 국민의 추대로 환국을 한다면 당연히 「황세손」만이 이름자 앞에 붙겠지만 그렇지 않고 종친회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절차에 불과하므로 사단법인 이씨종약원의 대표라는 뜻에서 「총재」 라는 직함이 추가된 것이라는 종약원측의 설명이다.

    왕손, 그것도 유일한 적통이지만 종친들 외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려는 존재.

    문중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는 국가는 고사하고 그 어떤 단체도 그를 공식적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시대. 이구의 존재는 황세손과 총재 사이를 움직이는 진자처럼 어느 한 점에서 자기 정체성을 고정 시킬 수 없는 불안정한 것이 된 지 이미 오래인지 모른다.

    황세손 이구는 알려진 대로 조선왕조의 비참한 말로를 대변하는 비극의 주인공 英王 이은(李垠)의 아들이다. 1897년 국호 조선을 버리고 대한제국의 기치를 내걸면서까지 외세의 압박과 국내의 분란 이라는 이중 틈바구니를 헤쳐보려다 결국 일본제국에 종속되는 불명예를 안고 만 高宗의 손자이기도 하다.

    영왕이 11세의 나이에 한복을 벗기우고 일본군복으로 갈아입히운 뒤 아버지 고종으로부터 붓글로 참을 忍자 하나를 써받고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손에 이끌려 홀로 일본 동경으로 옮겨진 것이 19 07년.

    일본에서 「英親王」으로 일본왕실에 편입돼 왕족의 딸 方子와 강제 결혼, 사실상 평생에 걸친 인질 살이 와중에 남긴 유일한 혈손이다. 이구의 형님뻘인 晋은 영왕 부부가 결혼 후 처음 한국땅을 밟은 1922년, 생후 7개월만에 의문의 급사를 해 청량리 인근 왕실 묘소에 일찌감치 묻혔다.

    마지막 황제 순종에게 후손이 없었던 관계로 배다른 형제 2명 중 영왕이 일찌감치 왕좌의 바톤을 예약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구한말의 격변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영왕은 왕통을 계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영왕의 유일한 아들로 남게되는 玖가 출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궤도를 이탈했고 그 틀어 진 궤도 한 켠 밤의 사막과도 같은 시공간에서 구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왔다.

    王家와 국가의 논리로 본다면 구는 시대의 사생아다. 조선의 붕괴로부터 발원한 숱한 비극의 한 가 운데에서 가장 철저하게 짓뭉개진 피해자 중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의 존재는 한국 현대사의 블랙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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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31&doc_nu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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