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옹주 '황녀 이문용'!

낮달청명

일본놈들에게
나라만 빼앗기지 않았어도...
고종황제의
딸이란 억겁의 인연이 아니었어도...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순헌귀비 엄씨가
포악한 자식사랑만 하지 않았어도...
염상궁 생모가
러시아 공관에서 고종황제의
성은을 입지만 않았어도...

불운의 옹주! 황녀 이문용의
불행하고 척박한 삶이
과연 있었을까?

어린시절 임상궁과 이재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녀는 손창열의 양녀로 가야만 했던 운명을 누가 점지해놨을까?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김한규라는 멋진 청년과
사랑해 결혼했지만
아들과 지아비를 함께 잃어버리는 청천벽력의 운명을 누가 만들어놨을까?

무정부주의자 시동생 김철진의
생활비 도움이
공산주의자 사상범으로
10년간의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 시절을 누가 만들어 놨을까?

죽지 못해 살아야 했고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닌
나라 잃은 황족의 슬픔과
엄귀비의 표독한 보복이 두려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했던 불운의 옹주! 황녀 이문용이시여!

차디찬 감방의 냉기보다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나요?
공산주의자란 사상범의 포박이 부끄럽지 않아서 였나요?
나라 잃은 죄많은 황족이란
손가락질이 더 두려워서 였나요?

당신은 1970년 이면용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황제가 아버지란 사실을
왜 그리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유주현의 '황녀'가
1972년 세상에 나와서 알려질 때까지 덕혜옹주의 슬픈 사연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슬픈 그 보다 더 아픈
당신의 일생을 아는 이는
몇 안되었더이다!

오늘 당신의 묘소를 들러
수 십년간 묘지에 박혀 있던
나무 뿌리들을 뽑으며
살아생전 당신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덩어리를 뽑는듯 했나이다!

오늘 묘소 앞에 있는
수 십년간 당신의 그늘을 만들어준 소나무가 쓰러질 때
암울했던 황녀의 불운이
벗겨지는 듯 했나이다!

기록되어진 당신의 역사는
암울하고 불행한 운명이었지만
이승을 떠난 당신의 운명은
아름다운 조선의 황실의 역사로 기록되어지길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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