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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천칼럼21 “천기누설 임금님 모시기 ”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2-10-04 10:51:15 조회수  1913

안천칼럼21

천기누설 (임금님 모시기)

 

꺼낼 필요도 없는 해묵은 얘기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면 전혀 할 얘기가 될 수도 없는 것을 다시금 또 재론해야 하겠다.

임금님을 새로 모시자는 논의를 처음으로 시작한 때로부터 거의 30년쯤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침략의 최대 최고 최악의 상처인 ‘임금님 상실상태’를 묵시적으로 인정하며 살아온, 추친일 친일사회가 부당함을 공론화한 30년이 흘렀다.

왜 우리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틀에 묶여서 잘못 살아 왔는가? 왜 일제침략의 어둠의 그늘에서 우리는 어둡게 살고 있는가?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공론화한 30년이었다.

그런데 그 30년의 흐름에서, 기나긴 동안을 끊임없이 ‘임금님은 누가 되는가’라는 상투적인 정략적 질문을 들어 왔다. 일제침략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참담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첫째로 할 일은 임금님을 모시게 할 ‘여건조성’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인데도 항상 그러했다. 무조건 누구를 임금님으로 모시자는 논의에만 관심이 큰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생각하면 이구 황태손 변사사건과 같은, 감히 상상도 못할 경악할 일까지도 그래서 돌발적으로 발생했던 것이다.

‘이구 황태손 의문사’는 사실상 예전 광무황제께서 돌아가신 비극과 같은 충격적 사건이다. 그냥 자연인의 의문사도 용납될 수 없는데, 지엄하고 드높은 금상의 임금님에 해당하시는 분의 비극적 죽음을 그대로 묵과할 수는 절대로 없다. 현대판 경술국치, 그 참극이 일어난 때부터 사후 오늘까지의 모든 과정이 낱낱이 재검되어야만 한다. 결코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국가차원의 중대한 역사이다.

그토록 엄청난 사건까지 발생되는 당혹스런 지경에 이르렀지만, 생각하면 애초에 30년 전에는 엉뚱한 소리나 듣는다는 듯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어디에 임금님 후보라도 있느냐는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시간이 흐르며 줄기차게 이어진, 흡사 정치권의 줄서기와 같은 추한 모습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급기야 이구 황태손 의문사 사건까지 돌발한 것이며, 어처구니없게도 그 중대한 일을 은폐한 기막힌 일까지 나온 것이다. 왜 100년전에 일제침략을 당했는가는 벌써 까맣게 잊었다. 그러고는 변함없이 100년전의 잘못된 추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모습에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나라가 왜적에게 침략을 당해서 비참한 강점상태가 된 때에, 상해로 망명한 사람들에게서도 그 잘못된 점은 똑 같았다. 당시 상해 인사들은 3․1 만세운동 직후에 나라를 빼앗기고 도망치듯 탈출하여 모였던 사람들인데도, 항일전쟁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당시는 임금님이신 광무황제가 충격적으로 독살 시해되어 국상을 맞은 직후였다. 임금님이 참혹하게 돌아가시고 나라까지도 빼앗긴 최악의 비참한 시기인데도, 항일전쟁에는 별로 생각도 없었다. 최악의 국난기를 맞아 망명한 사람들이, 자리다툼에나 탐닉하며 분란만 일으키다가 흐지부지 흩어졌던 것이 상해 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를 만든다며, 자리싸움만 하다 용두사미로 끝나며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임시정부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스스로 찾아와 찬란한 위업을 쌓아 줄 때까지, 장장 20년을 개점휴업 상태로 몇몇이 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 생각하면 상해 임시정부는 거론할만한 역사적 가치도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최악의 국난을 맞아서 철저히 항일전쟁을 벌인 것이 아니다. 항일전쟁 애국애족보다 하찮은 감투싸움 내분에 더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장준하, 김준엽 등의 학병 회고록에는, 그들이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상태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하여 찾아간 임시정부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고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황실복원 논의가 시작되자, 그것은 똑 같았다. 무조건 누구를 임금님 후보로 모시자는 사사로운 흑심에나 사로 잡혀서, 온갖 잘못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졌다. 임금님을 새로 모실 여건조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협잡꾼, 훼방꾼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망치는 것이다.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내가 먹겠다고 숟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것이며, 밥상을 빼앗아 먹겠다는 생각만 앞선 것이다. 현재도 황실 차원에서는 변함없는 국난기인데, 거의 상해 임시정부의 행태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로서, 임금님이 되실 분은 누구인가? 그러나 현재로서는 누구도 정해진 분이 없다. 예부터 임금님은 하늘이 내시는 드높은 분이다. 그래서 예부터 임금님은 천자(天子)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최선의 노력을 하고서, 겸손하게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옳다.

임금님은 앞으로 임금님이 새로 모셔질 여건이 충분하게 조성된 때에, 마음을 비운 허심탄회한 상태에서 국민이 흔쾌하게 동의할 분을 임금님으로 모셔야 한다. 사사로운 마음을 앞세움은 절대 금물이다. 그래야 모든 국민이 새로운 임금님을 우러러 모시고 존경할 것이다. 하지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우리의 속담과 같이 잘못된 상황은, 현대 황실 복원 논의에서 줄기차게 이어졌다.

앞으로는, 깨끗하고 담백한 마음으로 임금님 모시기 운동을 해야만 한다. 임금님이 모셔질 때가 될 때까지, 그러므로 누구나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여건조성에 최선을 다해야 옳은 일이다. 그 당연한 것을 외면하고, 상해 임시정부와 비슷한 추태를 보이는 잘못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그런데도 예컨대 어떤 사이버 공간에서는 저질 정치꾼들 흉내를 내며, 상상도 못할 악담, 비방,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사심을 품은 부당한 사람들이 부당한 짓을 저지르는 것 때문이다. 왜 이완용 아류와 똑 같은 일을 오늘날에도 자행하는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그렇게도 없는가? 지금이라도 잘못된 점을 고치고 마음을 담백하게 비워야만 한다. 역사창조는 백의종군을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사심을 깨끗이 버려야 하늘을 감복 시킬 수 있다.

일컬어, 황실복원운동을 한다고 함은 현대판 항일전쟁 독립운동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고매한 민족지사가 하는 것이다. 숭고한 우국지사가 조국에 몸 바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혹시 지금까지 잘못된 바가 있다면, 단호하게 훌훌 털고 개과천선하는 결단을 즉시 내려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스스로를 점검하고 채찍질하는 매운 마음은, 예전의 애국지사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설익은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불세출의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전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음미하며 숙독해 보았는가? 윤봉길, 신채호, 윤동주, 이회영, 이상설, 이상룡, 안창호, 최재형, 홍범도, 나철 등 거룩한 선조들의 삶을 얼마나 탐독하고 생각해 보았는가? 빼앗긴 들판에도 봄이 올 것인가 외치며, 몸부림치고 통곡하던 그 진심이 없다면 조용히 물러나야 옳다. 신 항일전쟁사는 현재도 격조 높은 민족혼, 애국심을 변함없이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대한황실의 봄은 오지 않았다. 아직도 대한황실은 극심한 일제침략 후유증에 짓눌린 중증환자 상태로 있다.

새로운 임금님의 후보는 앞으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마음을 비우고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심지어는 일제침략으로 대한황통이 너무나 혼미한 지경에 이른 참담한 점을 감안할 때에, 태조 고황제 이후의 모든 ‘황통 가능성’을 개방상태에서 폭넓게 점검하려는 큰마음이 필요하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람으로는, 국민의 동의도 어렵고 하늘의 뜻도 있을 수 없다.

왜 태조 고황제 폐하의 조선시대가 개창되었는가? 당시의 신진 정치세력들이 태조 이성계 장군을 받들어 모신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그 가르침을 최고의 교훈으로 되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도 그 때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몽골족의 기나긴 침략에 이어서 황건적, 왜구가 고려시대를 풍전등화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처참한 폐허가 된 상태에서 공민왕 이후의 황통마저 혼미해져, 극도로 불신당하는 정치적 리더십 공황상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막다른 외통수에 몰려, 사실상 국가가 망국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폐가입진(廢假立眞)의 절박한 결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조 고황제의 조선시대가 개창될 정치적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새 시대를 창출함에 동의했던 것이고, 새 역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의 왜곡사관에서는 태조 고황제를 극도로 비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침략자들의 지극히 잘못된 모함성 편견일 뿐이다. 한국사를 오도하고 헐뜯으려는, 침략자의 꼬인 눈으로 보니 그렇게 잘못 보이는 것이다. 주인정신을 갖고 역사를 겸손하게 보면, 고려 말의 구제 불능한 국난기에는 강력한 리더십의 정립이 절실했다고 확신된다. 이성계 장군을 신시대의 지도자로 모신 것은 ‘구국 차원의 위대한 결단’이었다.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었다. 당시로서는 최고 최상의 결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조입국 결단’은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구하라는, 하늘의 드높은 뜻에 따르는 순리적인 것이었다. 주인정신을 갖고 국가안위를 생각하면 지극히 정당했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그 후 장장 600년이나 황통이 이어질 수 있었고, 새로운 역사가 기꺼이 동의해 주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도 ‘신 폐가입진’에 맞먹을 만큼의 당당한 명분이 있어야만 한다. 일제침략 후유증을 완전히 청산하고, 태조 고황제의 대통을 오늘날에도 당당하게 이을 확실한 명분 축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임금님을 모실 하늘의 뜻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결코 나랏님을 함부로 모실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아직도 하늘의 뜻이 정해진 것이 전혀 없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 아직도 부족한, 여건조성에 진력해야만 된다. 하늘의 뜻을 겸허하게 기다리면서, 땀 흘려 노력하며 베풀고 봉사해야 한다. 그렇게 겸손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자기를 희생하는 포용력 있는 사람에서 새로운 역사는 탄생된다.

흡사 새로운 현대판 태조께서 다시 탄생되는 만큼의, 살을 깎듯이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 새 역사를 창출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미완성 항일전쟁을 완수하려는 와신상담의 빼어난 경륜이 절대적으로 요망된다. 예전 태조 고황제 폐하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얻었다. 그래서 최악의 국난을 수습했다. 그래서 찬란한 세종 르네상스 신시대를 만든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오로지 세종대왕만 크게 돋보이고 있지만, 그것도 일제침략 후유증이 분명하다. 실제로는 광화문 광장에 태조 임금님께서 앉아 계셔야 옳지 않을까?

하늘의 뜻을 기만하고, 하늘의 뜻을 속일 수는 없다. 하늘의 뜻에 어긋난 사람에게, 하늘의 뜻은 결코 모아지지 않는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역사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 하늘은 정답을 알고 계신다.

 

         「 하늘은 역사발전에 헌신할 잠룡을 찾고 있다. 아니 알고 계신다.」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notice&doc_nu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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