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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천칼럼32 "한국 제1호 목사 ‘서경조’ "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3-03-12 09:48:02 조회수  2117

 

한국 제1호 목사 ‘서경조’

 

서경조는 철종3년인 1852년에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뒤에, 86세인 1938년에 중국 상해에서 작고하였다. 서경조는 한국 최초의 목사로서, 역사성이 대단히 높은 인물이다.

서경조는 그의 형 서상륜이 만주에서 로스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뒤에, 형을 따라 신자가 되었고 전도 활동도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국법을 어긴 것이 되어, 황해도 장연의 송촌 소래마을로 숨어들게 된다.

서경조는 장연에 한국 최초의 신식교회를 세웠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사랑방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장기적으로 기거하며 세워진 것이다. 사실상 한국 최초의 교회는, 언더우드가 머물던 서경조의 집 사랑채 건물에 간판을 달고 만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서경조는 평양에 신학교가 창설됨에 신학을 공부하여, 한국 최초 7인의 목사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평양은 당시로서 청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대외 교류가 편한 곳이었다. 평양에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경조는 그 후 언더우드와 함께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초대 목사가 된다. 서경조의 활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는 한국의 개화를 도왔고, 애국하는 한국교회를 만드는 일에 앞장을 섰다. 새문안교회는 한국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표상과 같이 출발하였다.

그런데 천주교의 김대건 신부는 그토록 유명한데, 왜 서경조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가? 그 까닭은 천주교는 친일노선을 걸었고, 개신교는 그렇지 않았던 때문이라 하겠다. 소위 105인 사건이라는, 안명근 의거 때에도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민족을 위한 일을 많이 했었다. 고통을 겪는 우리민족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었다. 그래서 일제에 피검되며 우리민족과 함께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제당국에 안명근 의거를 은밀히 일러바친, 그 밀고자가 바로 천주교 뮈텔주교였음은 이제 공개된 역사가 되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서경조는 아들 서병호와 함께 상해로 망명을 떠나, 활발한 독립운동의 길을 갔는데 서경조를 일제침략자들이 좋게 보겠는가? 그렇게 되니까 서경조, 서병호는 일제의 요시찰 불령선인이 되었다. 서경조는 일제강점기의 국사범 범죄자인데, 그의 이름이 그들이 만든 역사에 제대로 남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경조는 일제 정보 당국 비밀기록상의 범죄자로만 남은 것이다.

특히 서경조의 역사에서 유의할 점은, 서경조가 당시 황해도의 토착 세력가인 안중근 의사 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이다. 당시 안중근 가문은 천주교에서 집중적인 선교를 하였고, 안중근 의사의 부친인 안태훈 진사가 이끌며 가문 전체가 천주교도가 된다. 그런데 천주교는 친일노선을 걸으며 일제침략을 도왔고, 애국적인 안중근 가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따라서 안태훈 진사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서경조가 망명 독립운동의 노선을 택했음은, 황해도의 쌍벽을 이루는 두 가문의 애국의지가 서로 확실하게 연결점을 갖고 협력관계에 있었음을 말한다. 백척간두에 선 나라와 나랏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충군애국의 높은 뜻이 일치했기에 공동 전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국가가 존망의 기로를 헤매던 참담한 때였다. 그래서 힘 있는 유력 가문에서는 자력으로 포수들을 고용하며, 사실상의 의병을 양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어느 날 두 가문의 포수들이 사냥을 나갔다가 마주치게 되었다. 수 십 명씩의, 쌍방 무장 군인 집단의 대치 상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에 두 집단을 중재, 교호, 화합시키며 뭉치게 한 사람이 안태훈 진사와 서경조 목사였다고 한다.

이후 황해도의 쌍벽을 이루는 두 가문은 연합군 같이 움직였고, 종국에는 동반 망명 독립운동의 길을 간 것이다. 당시를 말해주는 얘기가 아주 재미있다. 상호간에 긴박하게 대치한 두 가병 집단이 화해를 하고 서로 숫자를 세니, 기묘하게도 똑 같았다고 한다. 그 많은 가병들도 훗날 대거 애국 전선으로 달려갔으니, 그들은 상호간에 종교적 차이도 갈등도 전혀 없었음을 뜻한다. 훗날 황해도에서 항일 애국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대한황실이 무너지며 망국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항일 독립전쟁에 나선 제1호 목사 서경조가 있었고 미국 개신교는 그를 철저히 후원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언더우드의 독자적 선교 활동과 같이 기록에 남았으니, 서경조의 활동은 혹독한 일제강점 상황에서 혹시 기록이 있더라도 숨기고 인멸시켜 잊혀져버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추친일 역사가 이어진 이 나라의 국사 시간에는, 김대건만 침소봉대하여 가르치고 서경조는 거론조차 하지도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주교 신부나 수녀는 거룩하다면서, 목사들은 속되게 세속에 물든 듯 비하하는 풍조가 만들어졌다. 왜놈들이 교묘하게 악의적으로 조장시킨 대로, 어둠의 추친일 풍조가 그렇게 남았다. 한국사는 이토록 잘못되어 있다. 너무나 침략자들의 원색적인 침략의지가 생생히 살아 있는, 거꾸로 기록된 역사이다. 친일매국 한 측은 좋게 역사에 남았고, 독립운동을 한 측은 범죄자로 남았다.

서경조의 아들 서병호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큰 활약을 했다. 그의 손자 서재현은 장개석 군대와 중경 임시정부의 수류탄 제조용 제철을 모두 담당한 책임자였다. 중일 전쟁의 폭탄 등 모든 무기 제조용 철제품을 총괄 생산한, 제철소 용광로를 책임지고 운영한 인물이다. 당시 임시정부는 물론이고 중국군에 있어서도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인 서재현이 최고 학력자 수준이었다. 그래서 서재현은 광복 후 최초의 해군 제독 병참감이 된다. 그 직계 아들이 요즘 고생하는 조선족들을 돕는다고 조선족교회를 세워 활동하는 서경석 목사이다. 서경조 부터 서병호, 서재현, 서경석을 잇는 핏줄은 민족정신에 투철한 남다른 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안천, 대한황실독립전쟁사: 일월오악도 제2권, 교육과학사, 2013, P.161~ 참조)

약 10여 년 전에 서재현이 작고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새문안교회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빼어난 독립유공자로 대전 국립묘지의 애국자 묘역에 정중히 모셔지되, 최초 해군창설 장군으로 해군에서 모든 예우를 다 한 해군장으로 엄수되었다. 새문안교회에서 대전 국립묘지 까지 해군에서 호상을 하며 군악대와 의장대가 모든 정성을 다 바쳤다. 이 시대에 감히 서재현과 같은 대단한 장례식은 찾기 어렵다. 그 어디에서도 다른 사례가 없을 대단한 예우였다. 서재현의 장례식은 서재현 개인만이 아니라, 서경조 가문 전체의 총체적 애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국사 교육에서는 김대건만 가르친다. 그렇게 말도 많고 잘난 사람도 많다고 하는 요즘 세상에, 서경조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서재현의 장례도 그렇게 예우를 했을 뿐이다. 곧 망각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허상은 지금도 이 땅을 짓누르는 추친일 먹구름 그대로이다. 새문안교회는 한국 최초의 오래된 교회라는 자랑만 이어지고 있다.

김대건을 일방적으로 크게 떠올리는 추친일 국사 교육은 분명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위대한 종교인 서경조가 다시 확실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문안교회도 재평가 되어야 한다. 추한 모습도 성스럽다고 우기는 세상에서, 오래된 자랑만 이을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그간 배운 우리나라 역사는, 아직도 곳곳에서 일본인들이 만든 친일매국 역사가 그대로 가르쳐지고 있다. 침략자의 침략을 합리화해주는, 거짓말이 너무 많다. 너무도 많은 내용을 일본인들 입맛에 맞게 왜곡시켜 정리한 그대로, 어둡고 부끄러운 추친일 역사이다.

 

「한국 제1호 목사 서경조의 역사는 다시 재조명되어야 한다. 현재의 추친일 역사를 거부하는 새로운 평가가 확실하게 요망된다.」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30&doc_num=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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