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주 도지사에게 감사한다

벌써 11년째 전라북도 전주에서 살고 있다. 사동궁에서 태어나 주로 서울에만 살았던 나로서는, 전주에 와서 산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곳이면서, 아무 사사로운 연고도 없는 전주에 올 때가 엊그제 같이 눈에 선하다.

내가 전주에 오게 된 것은 애초에는 서울교육대학교의 안천 교수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안천 교수는 약 30년 전부터 사실상 현대판 항일전쟁을 시작하였다. 일본이 끊고 망쳐 놓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정치체제인, 임금님 제도를 재정립하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안 교수님이 처음으로 임금님을 다시 모시자고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안교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만큼 경직된 사회였다. 침략자였던 왜적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패하고 섬나라로 쫓겨 가기는 했지만, 거의 일제강점기 그대로의 친일사회에 가까웠다. 우리생활의 많은 것이 일본문화에 짓눌린 암울한 것이었고, 거의 일본인 같이 생각하던 시대였다.

하기야 창씨개명을 당하고 일본어를 강압적으로 쓰며, 피눈물 속에 징용, 징병, 정신대에 강제로 끌려가며 일본인 같이 살았던 직후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둠의 사회에서 최초로 조선시대의 정당성을 말하고, 대한황실의 존엄함을 거론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더욱이 전주이씨 황실가문의 명예회복을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안 교수님의 용기 있는 현대판 항일전쟁이 이어지며 서서히 사회가 변해 나갔다.

그러한 흐름이 약 15년 쯤 흘렀을 무렵에, 생각지 않게 전주에서 연락이 왔다. 전주가 대한황실의 발상지니까, 나에게 전주에 와서 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전주는 깜깜한 암흑의 도시였다. 도무지 살고 싶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여러 택시 기사에게 물으면 거의 하나같이, 전주는 희망이 없는 절망의 도시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낙후된 분위기에서 약간의 한옥을 개조하여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실상 나에게 얼굴마담 노릇을 해 달라는 게 솔직한 이유였다. 그렇지만 당시의 정치사회 분위기에는 아직도 일제잔재가 적지 않게 잔존해 있었다. 그래서 그 제안을 한다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용기 있는 제안이란 표현이 더 맞다.

나를 최초로 전주에 모시자는 주장을 한 사람은, 당시 전주 시의회 의장인 주재민 이었다. 주재민은 매우 생각이 깊고 식견 있는 지방 정치인이었다. 조리 있고 열정적인 자세로 시의회에서 활약하는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그가 설득을 계속하며 당시의 전주 시장이었던 김완주를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김완주는 유능하고 큰 인물이었다. 어떤 일이거나 최초로 결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는 나를 전주시로 오게 해 주었다. 무슨 일이나 옆에서 살살 눈치만 보다가, 잘되면 자기 업적이고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려 매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공직자는 많은 경우에 모험을 않고 복지부동을 한다. 그러한 공직 풍토에서 전국 최초로 의미 있는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지금은 내가 사는 집 승광재를 두고 관광객들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집이라며, 전주시에 곱지 않은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사회에서, 당시 최초로 김 시장이 그 정도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아주 용기 있는 일이 분명했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일제잔재 의식이 남아, 대한황실을 매도하는 흐름이 잔존해 있던 때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요즘에는 전주시에 관광객이 600만 명이나 몰려들고 경주, 부여를 능가하는 상황에 이르니, 나를 모셔 가겠다고 여러 지자체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캄캄한 어둠 속의 그 당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

더구나 김완주 시장은 생면부지의 객지인 전주시에 나를 적응시키려 여러 배려를 해 주었다. 그래서 나를 전주대학의 이남식 총장에게 소개하며 객원교수로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이남식 총장도 매우 고마운 분으로 잊을 수 없다.

특히 주재민은 3선 임기를 마치자 곧 황실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이 되어, 뜻있는 각계 인사들과 여러 젊은이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나를 위한 일을 해주었다. 이렇게 내가 전주시에 성공리에 정착한 뒤에 김완주 시장은 도지사가 되어 영전해 갔고, 8년간 나는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김완주 시장이 초석을 놓아준 것이 고맙고 돋보이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밤낮없이 전주를 위해 일했다. 열심히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해 살았다. 그리하여 점차 대한황실발상지 전주의 얼굴마담을 넘어 상징인물이 되어 나갔다. 전주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행사에는, 시장과 함께 단상을 장식하는 등 전주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일에 열중했다.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일의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주를 방문했을 때이다. 그가 나를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하여 만났는데, 힘들게 산다고 위로하며 부탁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문화재청에서 태조 어진을 가져가고는 되돌려주지 않아 주민들의 원성이 컸기에, 그 얘기를 했더니 즉시 해결해 주었다.

문화재는 원래의 장소에 있어야 빛이 난다. 왜 열성조께서 전주에 어진을 모셨겠는가? 태조 어진은 황실발상지에 꼭 모셔져 있어야만 하겠기에, 조상님들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와 신선한 결단이 지금도 고맙다.

태조 어진은 나와 안 교수님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 홍보하고 중요성을 말하여 최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나라에는 아직도 왜놈들이 태조 할아버지를 헐뜯고 모독하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위대한 이성계 장군을 찬란한 영웅이 아니라 욕먹을 인물로만 몰아간 흐름이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야 국보가 되었던 것이다. 태조 어진은 이제 전주의 얼굴이요 민족의 얼굴이 되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경기전에 국보 태조 어진이 모셔진 것은, 나의 대표적 업적이다. 특히 경기전을 민족 최고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은, 안 교수가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글을 써서 이룩한 공로이다. 안 교수는 주변에서 본적을 전주와 전라북도로 바꿨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수없이 전주를 찾았다. 그리고는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수많은 사람에게 황실발상지 전주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전주 방문을 전심전력 역설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피해지였던 그 성스러운 곳이, 이제는 전주시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자랑이 되었다. 작년에만 경기전 입장료 수입이 7억이라는데, 그것은 나의 11년 전주 생활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꿰뚫어 보고 결단을 내려준 김완주 도지사의 안목이 만든 것이다. 정말로 삽시간에 일제강점기 최악의 땅이었고, 그 후유증 속에 신음하며 택시 기사마다 절망의 도시라 했던 곳이 천지개벽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지방자치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할 정도로 급변했다. 심지어 경기전과 태조 어진을 친견하러 오는 외국인도 줄을 이을 정도로 문전성시이다.

내가 이렇게 성공적인 정착을 하도록 해준 김완주 시장은, 전라북도 도지사를 두 번 연임하고 곧 8년간의 도백생활을 마친다고 한다. 그가 나를 도와준 것은 시장으로 있던 약 3년간인데, 그 후 나는 홀로 어렵게 버텨 왔다. 그렇기에 나는 김완주 도지사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 그가 많은 발전이 있길 바란다.

내가 전주에서 지낸 지난 11년간에, 전주는 불황을 모를 정도로 급변해 왔다. 곧 1000만 관광객이 몰려오는 국제적 명소로 떠오를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내가 사는 승광재를 보면서, 좁고 후락한 대한황실을 연상하고는 노골적으로 개탄한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일본이 망쳐 놓은 황실을 상징하는 노숙자 황손으로 살았기에 별로 크게 마음의 갈등이 없다. 나는 특히 가수생활로 살아 왔기에, 고통스러울수록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옥탑방 왕세자란 별명도 찜질방 황손이란 애칭도, 나의 현대판 황실독립운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나는 그 애칭들을 오히려 좋아 한다. 나는 오히려 누추하게 내가 버티고 있는 전주 승광재에, 전범 일왕이 사죄하러 오는 날이 꼭 오길 바란다. 그래야 아베 같은 한심한 일본인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야만 일본도 전범국에서 탈피한 정상적인 나라가 된다.

A급 전범 후손인 아베는, 자기 조상이 한국에 와서 자선사업을 한 줄 아는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전범 일왕이 누추한 승광재를 꼭 찾아오길 바란다. 그래야 일본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린다. 그래야 전범국 일본이 철이 든다.

오랜 공직생활을 떠나서, 나와 같은 자유인이 되는 김완주 도지사를 승광재로 초대하고 싶다. 11년간 정이든 이 집을 마련해준 김완주 도지사와 부담 없이 앉아, 전주 특산 모주 술을 즐겁게 마시고 싶다. 아니 김완주 도지사의 조촐한 퇴임식을 승광재에서 열면 더 좋겠다.

퇴임한 이남식 총장도 그립고,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많은 분들에게 큰 정을 느낀다. 아니 수많은 국민들이 이제는 승광재를 흡사 일제강점기 망명 궁궐 같이 생각한다. 흡사 독립군들 같이 애국심으로 뭉쳐진 관광객이 밀려오고 있다. 온 나라의 살아있는 국민들이 있기에, 나는 승광재가 경복궁이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준 김 지사의 퇴임에, 감격의 눈물이 나올 정도이다. 고맙고 고마운 김완주 도지사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융희 108년(2014년) 6월 12일

황실문화재단 총재(대한황손, 광무황제 친손자) 이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