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천칼럼10

자랑스런 초헌관을 사양한다.

초헌관은 제향을 모실 때에, 첫 술잔을 올리는 사람을 말한다. 두 번째 잔은 아헌이라고 하고, 끝에 올리는 잔은 종헌이라고 한다. 여기서 특히 초헌이 중요한 상징적 헌작이다.

2012년 3월 7일에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에서는, 연례대로 퇴계를 모시는 춘계향사(봄제사)를 올렸다. 그런데 이 날에는 타이완에 사는 공자의 79대 종손이 초헌을 맡고, 맹자의 76대 종손이 아헌을 맡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도산서원 창건 이후 역사상 최초의 뜻깊은 날이었다.

퇴계는 동양 유학사상을 완성한 최고봉의 인물이다. 동양유학은 공자와 맹자에서 출발되어, 주자를 거쳐 퇴계, 율곡에 의해 찬란한 열매를 맺는다. 많은 사람들은 막연하게 공자를 얘기하면서 공자가 동양사상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최고봉은 퇴계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퇴계를 잊고 막연하게 공자만 떠올리는 것은 일제침략의 후유증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에 퇴계학 서적은 물론이고, 학자, 활자, 학교체제까지 전방위로 완전약탈을 하여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도둑질을 감추고 겉으로는 공자만 내세워 그렇게 된 것이다. 퇴계를 내세우면 일본의 약탈 도둑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퇴계가 은퇴하며 선조 임금님께 바친 ‘성학십도’를 당시의 학자들에서는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었고, 더구나 극도로 황폐한 나락에 굴러 떨어져 있던 중국땅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동양사상의 최고 경지를 완성하면서, 임금님을 성심껏 모신 퇴계사상의 결정판이 바로 성학십도(聖學十圖)이다. 성학십도는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위대한 최고 학문의 경지를 나타낸다.

일본은 원래 임진왜란 때에 퇴계학을 약탈하기 전에는 극심한 야만의 땅이었다. 한국, 중국, 베트남같은 법도있는 나라에 존재하던 과거제도가 일본에는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에 우리나라를 약탈한 것을 갖고, 서양에서 온 약탈국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와 교역을 하며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일본의 부강은 임진왜란, 경술왜란의 약탈에 의한 죄많은 역사를 말한다.

중국은 요, 금, 원, 청의 북방족 식민시대는 물론이고, 명나라도 사실상 황건적 지배시대에 불과하여 학문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1천년 이상을 참담한 식민상태로 지낸 중국은, 더군다나 현대에는 최하층민들에 의한 공산폭도들이 집권하며, 잔존한 중국땅의 지성인들 조차 거의 모두 타이완으로 망명을 떠났다. 공자, 맹자의 종손들이 모두 타이완에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차라리 베트남이 중국, 일본 보다 더 뼈대있는 나라라고 할 정도이다.

공자, 맹자의 종손 일행이 퇴계의 춘계향사를 찾은 것은, 동양사상의 시원을 연 공맹의 후손들이, 최고의 꽃을 피운 퇴계학의 본향을 찾은 것을 뜻한다. 동양 학문사에 남을 역사적인 기념행사가 분명하다.

오늘날 중국 땅에 있는 공자, 맹자의 학문적 시원지는 거의 폐허만 남았다. 중국 산동의 곡부는 공자의 탄생 유적지라고 하지만, 공산당 마음대로 만든 번지없는 유적이다. 너무나 희극적인 모습인데 오늘날 곡부에는 거의 모두 공자의 후손들이 산다고 한다. 그 많은 숫자는 사돈의 팔촌지간이라도 먼 친척이 공(孔)씨라면 모두 공씨로 호적을 올린 때문이다. 그래서 곡부에는 거의 모두 공자의 후손들이 산다고 강변한다.

처갓집 먼 친척이 공씨라 자기도 공씨라는 택시기사의 얘기를 듣고는, 듣는 사람들 모두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듣는 이들 모두가 너무나 어이가 없고 웃을 마음도 사라진다. 중국땅의 거의 대부분을 가짜 허상이 지배하는데, ‘공산당 마음대로’라는 말이 왜 나왔나 알 만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나라에서 학문을 짓밟고 공자를 짓밟으며 현대판 분서갱유의 정치를 했던 중국 공산당이, 공자의 종손까지 타이완에 망명을 가 있고 곡부는 폐허 상태라서 억지로 만든 결과가 곡부에는 공씨들만 산다는 희극이 탄생한 것이다.

덧붙여 중국에서는 헐벗은 10억 농노들의 피땀을 착취하여 무조건 돈을 벌자, 전세계에 공자학원을 세우며 공산당 선전을 하고도 있다. 흡사 별안간 떼돈을 번 졸부가 읽지도 않는 책을 사다 서재를 꾸미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공자학원은 땅에 떨어지듯이 학문을 짓밟은 뒤에 남은 열등의식의 반작용으로 탄생했고, 단순하게 기초적 중국어나 가르치고 공산논리 선전공작 센터의 구실을 할 뿐이다.

이러한 일환으로 곡부의 공자 묘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급조하여 공씨집단으로 만들고, 곡부에는 거의 모든 주민이 공씨로서 공자 후손들만 산다고 거짓 선전을 하는 것이다. 곡부 희극! 그것은 모택동이 공포의 독재정치를 하며 공자를 최고의 타도대상으로 몰아 탄압하고 학자들을 짓밟은 참혹상을 호도하려는 위장전술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산당 전략에 따라 타이완을 공격하는 심리전 일환일 뿐이다.

중국땅에서 공자는 지금도 사실상 공산당의 이용대상일 뿐이고, 반역자 임표와 공자를 공동의 적으로 몰아 격렬히 공격하던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을 할 때와 같이 잔혹한 타도대상에서 변한 것이 없다. 오로지 공산당 심리전을 위해 전세계에다 전투하듯 공자학원을 만들 뿐이다.

그런데 이 날의 예정된 자리에 공자의 79대 종손은 부부가 참석했으나, 자랑스런 초헌관은 사양하고 정중히 예의만 갖췄다. 그 이유는 본인이 종손으로서 아직 곡부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퇴계 향사의 초헌관은 사양하겠다는 것이니 이해가 간다.

요즘 6․25혈전을 겪은 한국에도 그렇고, 피바다 국공내전을 겪은 타이완에도 그런데, 일부러 아픔을 망각하는지 의도적으로 잊는지 이해하지 못할 사례가 많다. 하지만 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무조건 중국땅을 가는 시대에도, 공자의 종손답게 어둠의 땅에는 결코 발을 내딛지 않았다는 말에 숙연해진다. 특히 초헌관을 사양하는 사려깊은 몸가짐에 공자님 종손다운 기개와 품격이 느껴진다.

「뼈대있는 나라 타이완의, 법도있는 공자님 종손은 인격적 차원이 다른 것이다.」

「초헌관, 그것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감각도 없는 사람이 많아 졌다.」

임금님이, 더구나 일제침략자들의 뜻대로 사라진지 100년쯤 지난 우리나라에도, 중국땅 사람들 같은 한심한 사람이 적지 않은 시대가 오늘날이다.

일본인들은 침략시대에 우리땅 전체를 부락이라고 불렀다. 부락은 일본의 천민촌을 뜻하는데, 우리민족을 그토록 모독했었다. 그런데 일본이 물러가고 환갑을 넘긴 지금도 부락민 체질이 많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이다. 일본인들이 욕하고 모독한 그대로가 옳다고 우리의 역사와 임금님을 덩달아 비방하는가 하면, 스스로는 사실상의 부락민 그대로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자, 맹자의 후손들이 찾아온 퇴계학의 성지는 그 옛날의 영광일 뿐인가?

그날의 행사에서는 성학십도 탁본뜨기 행사도 열렸다. 그것도 예리하게 살펴 볼 가치가 크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깊은 의미가 있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성학십도를 보고서 감탄하며 그 탁본을 떠가는 공자, 맹자의 종손들은 퇴계학의 본향에 남은 드높은 법도와 품격에 감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학십도는 모조품이다. 그 원본은 이웃한 소수서원에 있다. 그 까닭은 퇴계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정통 대학이 소수서원이고, 퇴계가 은퇴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서당을 나중에 후손들이 확대하여 만든 것이 도산서원이기에 원본 성학십도는 당연히 소수서원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의 혼이 깃든 최고의 소수서원과, 후학들이 퇴계를 존경하며 만든 도산서원을 떼놓아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이 달리 보이게 되었는가? 그 까닭은 퇴계학 본향을 일제침략자들이 극도로 탄압한 때문이다. 소수서원 땅은 안중근 의사의 본향 순흥이다. 더구나 항일전쟁의 주축이 유학을 배운 정통 유림이었기에 퇴계학의 본향에서 애국자들이 수없이 배출되었으며, 그에 따른 극심한 탄압이 뒤따른 후유증이다. 그래서 도산서원이 소수서원 보다 더 거론되며 1000원짜리 돈에도 들어갔다.

이날의 행사는 동양 ‘학문사’, ‘사상사’에 남을 중차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대한 소식을 듣고도,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남의 나라 얘기를 듣는 기분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나라 전체가 아직도 추친일 흐름이 강하고, 침략시대에 뿌려진 사상적 병균이 많이 잔존해 있기에 그런 것이다.

퇴계 향사에서의 모든 흐름은 한낱 구경거리일 뿐인가? 동양최고의 학자요 민족의 스승인 퇴계의 드높은 마음은 사라지고, 퇴계 향사 구경꺼리만 남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

「임금님께 간절한 충성심으로 성학십도를 바친 퇴계의 충심은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