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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천칼럼43 "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이석 황손 " -광복절 70주년 특별칼럼-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5-07-01 17:51:15 조회수  1688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이석 황손


-광복절 70주년 특별칼럼-



* 사라진 세종대왕 어진(초상화)


  광화문 광장에는 몇 년 전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세워졌다.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은 서울의 상징물 같이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얼굴과 같이 생각될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서, 그 동상의 얼굴이 얼마나 고증되었는가를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울의 최고 중심부에 세워져있으니, 정확한 세종대왕의 용안(임금님 얼굴)이라고 무작정 믿어버리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용안은 하지만 전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만 원짜리 지폐에 있는 세종대왕을 비롯한, 곳곳의 세종대왕 용안은 상상의 가상적 얼굴이다. 물론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도 본래 세종대왕의 진짜 용안이 아니다.
  만 원짜리 돈에 세종대왕이 그려진 때는 5․16혁명 직후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그 이전의 자유당 때에는 모든 화폐에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감히 이승만 이외의 인물 초상화가 그려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자유당 때에 얼마나 독재가 우심했는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승만은 사실상 전제 군주국가 임금님과 흡사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 혁명적 화폐개혁 발상


  남북한이 당시는 난형난제의 거의 비슷한 전제군주 독재체제였다. 남북이 똑같은 전통적 임금님 체제에 가까웠다. 아니 일제강점기 천황제가 거의 그대로 승계되어진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남북한을 포함하여 일본도 대동소이 하였던 때가 되겠다.
  우리는 일본 정치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일본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라가 사라질 정도로 처참하게 참패한 뒤로, 미국이 너무나 무서워 겉보기로만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변함없이 전통적인 천황제 그대로이다. 오늘의 일본을 순수한 민주국가로 보는 것은 오해이며 착각이다.
  많은 일본 지도층 인사들도 본질적 속내를 말할 때에, 일본은 사실상 예부터의 전제 군주국가 그대로라고 말한다. (한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로 지레짐작을 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귓속말을 할 정도이다.) 일본은 전형적 군주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를 것이 없다. 일본은 국가운영의 본체가 실질적으로는 100년 전과 다름없다. 전근대적 정치체제의 나라가 확실하므로 아베 독재가 가능한 것이다.
 
  요즘 아베 총리가 안하무인으로 준동하는 것은, 일본의 참 모습 속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은 역사상 단 한 번도 혁명이 없었던 무시무시한 나라이다. 일본인들은 그래서 살살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산다. 북한에서 단 한 번도 혁명이 없었던 바와 꼭 같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패하며 맥아더 원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개혁을 선언했지, 내부 역량에 의해 민주화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라이다.) 실질적인 칼잡이 공포정치 체제가 내부적으로는 변함없다. 아니 확고부동하다.
  TV화면에 나오는 일본 내각회의 장면이나 국회운영 장면을 보면, 너무나 한국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내각회의 모습은 흡사 TV 드라마에 나오는 조폭 드라마와 같다. 그것은 100년 전과 다름없다. 주군 앞에 꿇어 엎드리고 어전회의를 하던 바에서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는 것이다. 요즘 아베 총리의 언행은 거의 칼잡이 두목답다.
  맥아더 장군에 의해 무장해제가 되자, 칼잡이 군국주의가 패전 후에 야쿠자 정치로 변형되어 야쿠자가 조정하는 체제로 바뀐 것뿐이다. 일본사회는 전근대적 강압체제에 눌려 눈치만 본다고 할 정도로 개인은 힘이 없다. 그것은 국가 전체가 야쿠자 체제로 위장된, 전통적인 군국주의 공포정치 체제 그대로라 그렇다. (아베와 자민당 간부들은 그것이 몸에 젖어 있어, 자기도 모르게 언행이 그런 것이다.)

  그러한 동아시아 국제정치 틀에서 남쪽은 오늘날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북한은 시종여일한 독재체제로 오늘의 김정은 체제가 된 것이다.(과거에 김일성은 캄보디아 시아누쿠 국왕의 망명 시절에, 몇 년에 걸쳐 시아누쿠를 극진하게 평양에서 모시고 있었던 바를 유의해야 하겠다.) 폴 포트 공산체제로 인해 망명객이 된 시아누쿠 국왕을 공산국 북한에서 극진히 보살핀 것은 결코 기이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순수한 공산국이 아니다. 
  현재도 캄보디아 국왕의 경호는 북한 특수부대가 맡고 있다. 북한은 ‘공산 군주국 정치체’라고 할 세계 유일의 독특한 정치구조가 분명하다. 오늘의 김정은 체제는 김일성, 김정일을 이은 3대 세습체제로서, 임금님을 모시는 군주국에 흡사하다. 엄밀히 말해 북한은 공산체제를 도입한 전통적 군주국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에 있어서 북한과 일본은 거의 비슷한 전제 군주국가 체제이다. 한국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것이다.
  어떻든 일본을 자유민주국이라 함은 근본적으로 언어도단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진주만을 가미카제로 급습하였던 최악의 침략 전범국에서 근본적으로는 바뀐 것이 별로 없다. 일본은 겉보기로만 민주국가일 뿐이다.

  특히 일본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 보다 더 경직된 계급사회이다. 현재도 천황을 정점으로, 최하층 부락민으로 불리는 천민층까지가 생생히 살아 있는 나라이다. 일본에 부락민이 현재도 생생히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될 수도 없는 지극히 놀라운 일이다.(일본에서는 부락민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동화교육을 실시하며 동화정책을 쓸 정도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에 천황이 존재하는 것만큼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은 현재도 실질적으로는 전근대적인 병농공상 4계층의 신분제 국가이다. 최고 정치인부터 하찮은 직업까지 거의 정확하게 대물림되는 신분사회 그대로이다. 다만 패전 후에 4계급의 첫째인 사무라이 칼잡이들이 칼을 숨기고 양복을 입은 정치인과 야쿠자로 변신한 것뿐이다. 일본 사회는 자기들 스스로는 전혀 느끼지도 못하지만,  회사원은 물론 심지어 초등학생 까지도 획일화된 제복을 입은 군사조직체 같다. 
  모든 생활이 예부터의 군사조직을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는 확고부동하게 100년 전 그대로다. 변함없는 병농공상 계급체제 군국주의 국가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대를 이어 세습적으로 군림하며, 국회의원직도 아들이 승계한다. 아베 총리는 조상의 침략전범 죄업까지도 이어받아, 전쟁 노이로제 병에 걸려 전전긍긍하는 비정상 인물이다.
  일반 평민들은 그 체제에서 자기 판단력이 없다. 신분제에 묶여 못된 전범들의 가미카제가 되어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비정한 사회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잔혹한 신분제 사회이기에, 작은 구멍가게까지도 자식이 승계하는 4계급 신분제 그대로이다. 지금도 변함없는 군국주의 국가라, 사실상 4계급 군사조직체와 다름없다.
  일본은 요즘에 겉으로만 양두구육 정책으로 위장하고 있다. 실제로는 칼잡이 사무라이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 다시 권토중래할 날을 기다리는 간교한 나라라는 것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미국이 왜 6.25 전쟁에서 온 국력을 다해 자유대한을 방어했는가? 그것은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속사정을 꿰뚫어 볼 때에만 이해될 것이다.    
  한국 최초의 화폐혁명! 그것은 이러한 동아시아 체제 속에서 박정희 시대를 이해해야만, 당시의 화폐개혁을 보는 정당한 눈이 형성될 것이다. 4.19혁명과 5.16혁명이 끝나고서 화폐에 이순신, 율곡, 퇴계, 세종대왕이 등장했다는 것은, 단군 이래 사상 초유의 중대한 대변혁에 해당한다. 너무도 상상 밖의 놀라운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 화폐개혁을 하며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은, 정말 화폐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요즘의 생각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면 큰 오판을 할 정도이다.


* 태조 고황제와 세종대왕


  최고액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국내외적으로 나라의 얼굴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세종대왕이 등장했음은 실로 경이로운 초유의 혁명적 대사건이었다. 최악의 일제강점기 탄압을 받은 여파로 인해, 당시는 감히 조선시대 임금님 용안이 화폐에 등장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까막눈 역사시대였다.
  그것을 감안할 때에 세종대왕의 등장은 정말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이란 전대미문의 비극이 없었다면, 광화문 광장에는 태조 고황제 이성계 장군의 늠름한 동상이 세워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안천, 임금님 대관식: 교육과학사, 2014, pp.83~120 참조) 조선시대 역사를 뼛속깊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태조 고황제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이 백번 옳다.
  오늘날의 우리들 머릿속은 일제강점기의 악몽을 완전히 대청소 해낸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는 부지불식간에 못된 왜색 문화가 깊게 드리워져 있는 추친일병이 깊다. 한국사회 어디에나 일제강점병을 완전히 치유한 곳은 거의 없다. 적지 않은 것이 궁극적으로는 일제강점 당국을 대변하는 추친일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민족혼을 다루는 역사학계마저도, 완전한 순수한국 역사학이 되려면 요원할 지경이다. 심지어는 왜색 역사학에 침몰되어 있으면서도, 그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태조 이성계 장군은 풍전등화 상태에 있던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안정화 시키고, 찬란한 세종대왕 르네상스 시대를 만든 불세출의 위대한 영웅이다. 특히 고대시대 이래로 유일하게 평안도, 함경도에 해당하는 드넓은 고구려 옛터를 되찾은, 불후의 역사를 만드는 모든 토대를 만든 분이다.
  고려시대는 평양에서 원산만을 잇는 선이 북방 국경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의 북방 경략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나라는 존재하기도 어려웠을지 모르게 작은 나라였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 장군이 일본의 아기발도 침략군을 섬멸하며 황산대첩의 위대한 승리를 이뤘기에, 속 좁은 일본 사학자들이 잔혹하게 역사에서 짓밟아 10000원 짜리에는 세종대왕이 들어간 것이다. 우리들의 머릿속을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는 세종대왕 심상(이미지)은, 일제강점기의 역사인식 조작에 따라 태조 이성계 장군이 지극히 저평가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생각하되 태조 고황제는 한국에 태어나서 그렇지 누루하치, 주원장, 징기스칸과 맞먹을 희대의 영웅이 맞다. 그것은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의 신출귀몰하고 완벽한 대승을 기록하여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유일무이의 해군제독이건만, 넬슨의 명성이나 제갈공명의 소설책 허풍에 눌린 역사 해석이 풍미했음은 옹졸한 왜국 사학자들에 의한 조작의 성향이 컸던 바와 같다.
  넬슨, 제갈공명을 감히 이순신 장군에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도저히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없는 수준임에도, 일제침략 역사학이 그렇게 만든 것임을 유의해야만 한다. 특히 태조 이성계 장군은 침략사학의 피해를 너무 많이 입은 사례이다. 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역사적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보아야 할 정도이다. 흔적도 없게 인멸 당하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겨우 기사회생한 대표적 사례가 분명하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초기 무렵만 해도 이성계 장군은 거의 잊히어진 망각상태에 가까웠다. 더구나 온갖 오욕의 중상비방만이 난무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인식하고 있는 이성계 장군은 당시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태조 고황제 이성계 장군은 더욱 더 높게 재평가 되어야 옳다. 아직도 저평가 되어 있다.
  세종대왕도 훌륭하지만 어찌 태조 고황제 폐하에 견줄 것인가? 그리하여 광화문 광장에는 할아버지 대신에 손자가 좌정을 하고 앉게 된 것이다. 어떻든 당시 수준에서 생각한 우리들의 보편적 역사인식에 따라, 5.16혁명 직후에 세종대왕이 화려하게 화폐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한참 흘러 최근에는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도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 세종대왕 어진과 효령대군 초상화


  세종대왕의 등장이 그러나 애초부터 순탄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너무나도 큰 장애물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최고액권에 세종대왕을 그리려는 혁명적 결단을 내렸지만, 세종대왕의 용안을 그린 어진(초상화)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어진은 6․25전쟁 때의 부산 피난지에서 화재로 인해 불타 없어졌다. 멀리 부산까지는 정성껏 모시고 갔지만, 불의의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세종대왕 어진은 일제강점 암흑기까지 흑막에 덮여 있다가 화재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세종대왕의 어진은 처음부터 문자 그대로 완전한 상상화였다. 그래서 한때는 서양인에게 화폐 도안을 맡긴 때도 있었는데, 높고 긴 코에 서양얼굴이 된 기묘한 세종대왕 때도 잠깐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경에 서울 관악산 꼭대기의 연주암 절에서, 놀랍게도 효령대군의 진본 초상화가 발견되었다.
  효령대군 초상화의 발견은 대한황실사에 찬란하게 기록될 경이로운 축복이었다.  황량한 사막에 등장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효령대군의 초상화였다.
  그리하여 효령대군의 얼굴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 세종대왕의 표준 용안이다. 왜냐하면 효령대군은 세종대왕의 형님이니까 형제간에는 얼굴이 많이 닮았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효령대군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린 것이 만 원짜리 화폐 도안인 것이다.


* 세종대왕 동상과 이석 황손


  그런데 몇 년 전에 광화문 광장에다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려니까, 아무리 해도 입체적인 용안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종이에 그리는 초상화와 조각은 전혀 다른 창작 작업이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동상 제작을 담당한 조각가의 회고담에서는, 동상을 제작하면서 아무리 해도 멋진 용안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고민을 실토하고 있다. 그래서 조각가는 (본인이 A급 조각가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위대한 창작품이 탄생되는 데에 따른 산모의 진통과도 같은 것이었다. 서울의 최고 중심부에 모시는 온 민족의 상징 동상을 쉽사리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온 나라에서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존경하는 세종대왕을, 정말 세종대왕답게 제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리하여 조각가는 현존하는 대표적 황손인 이석 황손님의 얼굴에 착안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세종대왕 전성기 때의 나이에 걸맞는 이석 황손의 40대 장년기 무렵 사진들을 두루 참조하며, 창조적 창작물로서의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아주 멋진 동상이 만들어져 온 나라의 흠모를 받는 세종대왕 동상은, 이렇게 탄생한 창조적 국가 상징물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온 민족이 사랑하는 탁월한 예술작품인 것이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하는 미남자로 유명한 이석 황손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꽃 미남일 때의 당당하고 장쾌한 모습인 것이다. 기본 모델 자체가 이미 최고로 멋진 동상이 되고도 넘쳤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세종대왕 동상을 창작하면서, (1)세종대왕 직계 후손 중에서 가장 준수한 미남자를 택한 것은 아주 탁월한 착상이었다. 더구나 (2)‘비둘기 집’이란 국민 애창곡 가수로서, 전체 국민에게 폭 넓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직계 후손임은 더욱 동상에 애착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3)일제침략으로 모진 상처를 입은 대한황실의 명예회복을 위한, 미완성 독립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항일 애국 이미지가 더해진 감동 짙은 선택이었다.
  창작에 몰입한 조각가는 흡사 에밀레종을 만든 신라 장인이라도 된 듯, 온 나라의 호국의지를 쏟아 넣은 8만 대장경을 조각하듯, 온 국민의 상징 임금님으로서의 모든 뜻을 총합적으로 모아 응집한 위대한 창작예술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멋지고 장중하며 품위가 넘치는 기념비적 동상 앞에 선 많은 사람들은, 찬란한 민족사를 느끼고 뿌듯한 민족애를 한가득 품게 된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다운 놀라운 예술혼이 온 몸을 엄습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억만대를 이어갈 민족 최고의 상징 예술품의 탄생! 그것은 조각가의 번득이는 예지에 따른 최고의 선택이었고 최상의 판단이 분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종대왕의 동상이 아니라, 이석 황손님의 동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각가의 창작의지는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10000원 짜리 돈의 세종대왕 어진을 결코 효령대군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화폐에 있는 세종대왕의 어진이 형님인 효령대군을 바탕으로 한 것이나, 현존하는 세종대왕의 직계 친손자의 얼굴을 바탕으로 청동 예술조각상을 창작한 것이나, 둘 다 똑같이 가장 최선의 해결 방안이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효령대군이 역사의 인물이듯, 현재의 이석 황손님도 이미 대한황실 명예회복운동에 평생을 바친 살아있는 역사의 인물임을 많은 국민이 널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천, 황실부흥 선구자 이석, 교육과학사, 2015 참조)
  더욱이 광화문 광장에 모셔진 예술 창작품은, 그 앞에 서서 우러러 보는 순간에 벌써 온 민족의 얼을 광범하게 포용한 세종대왕 기념물로 치환된 것이다. 벌써 위대한 예술 창작품으로 황홀하게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 세종대왕 동상과 주체적 안목 


  만 원짜리 돈의 제작이나 동상의 창작이나,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역사가 만들어지고 축적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를 후손들은 감동으로 추상화시켜 끌어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창작하는 흐름 못지않게, 역사를 해석하고 포용하는 후손들의 마음가짐도 아주 중요하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보거나 만 원짜리 지폐의 용안을 볼 때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관광객의 차원에서 단순하게 한국의 훌륭한 역사와 임금님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아니다. 보다 깊은 것을 통찰해 보는, 주인 정신을 가진 주체적 안목이 있어야만 진짜 한국인일 것이다.

  만 원짜리 화폐나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을 친견하는 진짜 우리민족이라면, 자세도 마음도 전혀 남다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문화와 역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세가 분명해야 옳은 일이다. 그리하면 일제침략에 의해 짓밟히고 사라진 우리 임금님의 용안은, 결코 단순한 청동 쇳덩이가 아닐 것이다. 결코 만 원짜리 종잇조각일 수 없을 것이다.   
  동상 앞에서 세종대왕을 우러러 보고 있을 때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거룩한 모습으로 마음속을 꽉 채우는가? 감격적으로 경건하게 다가오는가? 세종대왕의 생생한 어명이 가슴에 감동적으로 안겨지는가? 기쁨으로 들려오는가? 유구한 민족활동 역사가 세종대왕의 용안 너머로 거대하게 넘실거리는가?
  이상의 물음에 대해 확고부동한 답변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한국인일 것이다. 세종대왕의 동상 앞에 서 있을 때에 위대한 민족사가 민족 교향시로 승화되면서 우렁차게 울려오고, 한 마음 가득하게 감동이 용솟음치는 사람이 진짜 한국인일 것이다.


* 진정한 우리민족과 세종대왕


  세종대왕의 동상 앞에 서서 안중근 의사의 애국충정이 가슴을 치고, 신채호 선생의 망명 눈물방울이 심장을 적시는가? 잃어버린 나라와 나라님에의 불충을 자책하며, 눈 내리는 만주벌에서 목 놓아 울며 땅을 치던 애국선열 독립운동가들의 통곡소리가 들려오는가?
  항일전쟁의 최전선을 달렸던 민족지사 들은,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나라와 나라님께 깨끗이 바쳤던가? 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는 진정한 한국인이라면, 이 시대의 시대정신에 충실한 살아있는 항일 애국 선각자라면, 세종대왕의 동상 앞에서 잃어버린 임금님의 살아있는 생생한 용안이 떠올라야 할 것이다. 세종대왕의 살아있는 거룩한 목소리가 온 하늘을 꽉 채우며 힘차게 다가와야 할 것이다.


* 님의 침묵을 초극하는 절대적 어명 


  세종대왕의 인자하신 미소에서, 잃어버린 우리 임금님의 용안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진정한 한국인일 수 없다. 항일 애국자들의 숭고한 유지를 받들 각오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진정한 우리 민족일 수 없다.
  세종대왕의 동상 앞에서 살아있는 어명을 들을 수 있는가? 항일애국 선열들께서 찾아 헤매던, 우리 님의 진정한 용안이 보이는가? 거룩한 역사적 계시가 떠오르는가?
  잃어버린 용안을, 사라진 용안을, 꿈속에서라도 잊을 수 없는 용안을, 이제라도 확실히 되찾아야 할 것이라는 절대적 어명이 가슴을 치는가? ‘님의 침묵’이 태풍 같은 거센 감동으로 바뀌어, ‘힘찬 어명’이 되고 ‘님의 호령’이 되어 우렁차게 들려오는가? 우리의 잠자던 머리를 뒤흔들어, 뇌성벽력 우레와 같이 깨우치는가?


안천(서울교육대학교 한국학교육연구원장)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30&doc_num=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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