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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우 황손 ‘묵언공백 신도비’ 침묵선언문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5-05-06 10:36:04 조회수  2735


이우 황손 묵언공백 신도비침묵선언문


 

 

이우 황손은 대한황실 항일전쟁사의 영광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일제침략에 정면으로 항거하는 실질적인 독립전쟁 사령탑이었던, ()왕의 둘째 아들이지만 사실상의 큰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의왕은 일제침략에 순응하며 일제에 고분고분했던, 큰 아들 이건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강경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대한황실의 최고위 황족 신분이지만, 당시 일본이 강제로 대한황실을 천황가에 흡수 통합시킬 때에 공작으로 모셔진 이우 황손은, 일본으로서도 너무나 정치적 비중이 높은 최고위 위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 강제 인질이 되어 잡혀간 영왕에 맞먹을 만큼 큰 인물이었다. 사실상 대한황실을 대표하는 상징 얼굴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일본에 순종하는 이건 황손과 달리, 단호한 항일자세로 일본을 속 썩이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간 항일전쟁사 연구는 비정상적인 흐름이 컸다. 항일전쟁의 핵심 중추를 민간으로 한정시킨 시각이 주류였다. 현대시대에 나온 대부분의 근현대사 연구는, 거의 다 임금님 변인을 삭제하고 쓰여 졌다. 흡사 이 나라에는 단군 이래 임금님이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쓰여 졌으니, 부지불식간에 일제 침략사관에 동화된 추친일 역사인식이 자리를 잡은 때문이다. 사실상 제2차적 친일역사 논리가 지배해온 암울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제가 왜곡하고 인멸시킨 어둠의 역사에다, 이승만 때의 황실탄압이 가중 되면서 만들어진 잘못된 추친일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상 일제 강점사관에 짓눌려, 본질을 상실한 2차적 친일 역사인식으로 전락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황실은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절대로 주변 객체가 아니었다.

이우 황손은 일본군 대좌 신분으로, 북중국 태원 주둔군에 강제 배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전격적으로 히로시마에 강제전출 발령을 받았고, 첫 출근을 하다가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세상을 등졌다.(안천, 일월오악도 제5: 정통 대한황손 이초남, 2015, p.257 참조) 그가 별안간 전근된 까닭은, 당시 학병들이 대거 탈출하여 독립군에 합류할 것이란 극비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이우 황손이 있다는 긴급 정보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조선 학병들의 큰 신망을 받던 구심점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학병들과 함께 망명 탈출한다면, 항일 독립전쟁은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독립군의 최고 지도자가 될 위치에 놓여 있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전연패하며 패전 위기로 내몰리고 있던 일본군으로서는, 그 정보가 너무나 결정적이고 충격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안천, 일월오악도 제4: 황실부흥 선구자 이석, 2015, p.387,394 참조)

그리하여 히로시마 강제 전출이 전격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이우 황손의 사망일은 뜨거운 8월 초순경이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된 날은 86일이다. 당시 출근 하다가 원자열풍에 피폭되며 중상을 입었던 이우 황손은 다음날인 7일에 운명하였다. 그리하여 815일에 서울 운동장에서 사회장(육군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이우 황손은 당시 사실상의 임금님 위상을 가질 만큼 우리민족의 중심이었다. 왜적들도 거국적 차원의 장례를 모셔드려야만 되는 최고위 황족이었다. 이우 황손의 장지는 경기도 마석이다. 그 곳은 서울에서 가자면 한 두 시간에 다녀 올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대한황실의 임금님 묘역인 동구릉은, 바로 서울 도심과 마석의 중간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이우 황손의 묘소는 비운에 문을 닫은 대한황실사를 반영하듯 매우 특이한 바가 있다. 첫째로 증조부이신 대원군의 바로 옆 자리일 만큼 위상이 드높다. 그 주변에는 황족들 묘소가 산재해 있다. 이는 죽어서도 이우 황손이 황족의 중심 지위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로 매우 독특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우 황손의 묘소에 세워진 신도비에 글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공백 상태의 특이한 비석이라는 점이다. 그 어디에도 사례가 거의 없는, 빈 공간의 묵언 백비 신도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우 황손은 일제강점기에 철저하게 감시와 탄압을 받은 최고위 황족이다. 이우 황손은 그러므로 그의 삶을 생생하게 아는 사람이 거의 있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심지어는 그의 부인 박찬주 조차 남편의 진면목을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베일 속의 거물 황족이었다. 평상시에 평범한 생애를 보낸 사람도 누구나 비밀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서도 최악의 암흑기를 산 최고 황족의 항일애국 일생을 제대로 밝히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춘원 이광수 같이 철저히 위장 투쟁을 한 사람을, 껍데기 표출 사료로만 평가하여 최악의 변절자로 파악한 기존 연구물들은 독립전쟁사를 너무나 모르고 모독하는 것이다. 이광수가 평화시대에 안일하게 산 평범한 소설가였던가? 하지만 현존하는 이광수의 평가는 철저히 껍데기 일제사료에 농락당한 거짓말 역사뿐이다. 하나같이 이광수의 본질을 오판하면서, 위대한 애국계몽 소설가를 폄하하며 짓밟고 있다. 왜적사관에 천편일율 최면된 추친일 해석물이 아직도 이광수를 강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우 황손도 요즘 껍데기 표출 사료로만 파악한 사례가 횡행하고 있다. 이우 황손은 물론이고, 대한황실을 근본부터 모독하는 천박한 상태에 머문 역사인식이 난무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잡글들은 너무나 창피할 정도이다. 흡사 일제당국 선전물이란 착각이 들 정도로 황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초현대 시대인 오늘날에 이우 황손을 모독하는 경악할 글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그런 엉터리 문학, 추친일 역사에 침몰해 있는 한국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있어야 하는가? 이광수는 물론이고, 이우 황손도 오도된 사료를 정당한 사료로 치환시킨 재해석이 절실하다. 현대의 평화시대 역사연구도 단세포적 역사인식은 금물인데, 대한황실 항일전쟁사가 겉껍데기 표출사료에 기속됨은 절대 금물이다.

요즘 현대시대에 있어서도 일본은 역사왜곡 거짓말을 상투적으로 일삼는 최악의 비열한 나라이다. 온 세계 인류사회 전체가 부당하다고 지적해도, 아베 총리를 필두로 자민당 전범집단 전체가 거국적으로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비겁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데 항일전쟁사를 아직도 전쟁범죄국 일본의 침략 선전논리에 최면당한 채 그대로 쓴 연구물이 적지 않다. 특히 현존 대한황실 표출사료들은 너무나 왜적들의 침략사료에 침몰된 성향이 짙다.

이우 황손은 장례식 날자 부터가 흡사 드라마 소설과 같다. 일본 천황이 항복하는 그 날 그 때가 바로 장례식이었다. 최초의 광복을 맞는 제 1회 광복절의, 그토록 감격적인 순간에 장례식을 거행한 것이다. 그 때에 맞춰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마치 전범 천황이 마지막 순간에 이우 황손에게 항복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우 황손의 신도비에는 아무 글자도 쓰이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일제강점기 대한황실 독립전쟁사의 본질을 말하는 핵심 사안이라고 하겠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우 황손의 생애를 당시로는 누구도 신도비에 써 넣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요즘에 보면 너무 경솔하게 일본 측의 왜곡된 정보나 날조된 자료를 갖고 제멋대로 무엄하게 글을 쓰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경솔한 추친일 매국 성향의 글일 가능성이 높다. 이우 황손 사료는 그간 알려진 표출 자료가 더 거짓된 내용이다. 숨겨진 극비사항이 보다 더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실상을 알기에 감히 신도비를 쓸 수가 없었다고 보인다.

둘째로 이우 황손은 신도비에다 무언의 말을 분명하게 남기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러므로 신도비의 빈 공간은 말없는 말을 웅변으로 전하는 침묵 선언문이라고 하겠다. 이우 황손은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하고 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말없는 말로, 무언의 생애를 살았던 특수 인간이다. 그런데 감히 누가 신도비를 쓸 수 있겠는가?

셋째로 이우 황손의 신도비가 빈 공간의 묵언 백비 상태인 것은, 그 내용을 훗날 채워 넣을 수 있는 후손에게 사명을 부여한 것이며 무언의 유언이라고도 하겠다. 이우 황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을 때에, 당시로는 본인의 진짜 유언을 전할 사람도 없었다고 해석된다. 당시 누구도 이우 황손의 마음을 정상적으로 읽을 사람이 없었다고 하겠다.

이우 황손의 묵언 백비 신도비는, 생각하면 항일전쟁기를 상징하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 1 순위국보급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둠의 시대를 치욕적으로 살았거나 매국노로 살았던 사람까지도, 자신을 거짓말로 호도하거나 미화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을 세인은 잊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그 암울했던 비극의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은, 오히려 묵언 공백비가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유일 최고의 국보급 신도비는 어느 날 이우 황손의 묘소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당시의 역사를 올바르게 안다면 경천동지할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항일전쟁기를 산 최고의 자랑스러운 황손이 묻혀있는 마석 묘소에서, 그 중요한 기념비적 신도비가 증발된 것이다. 이우 황손의 묘소는 그 옆의 대원군 묘소와 함께 최고의 역사성을 갖는 중요 사적지가 되겠는데, 어이없게도 그 신도비 문화재가 덧없이 사라졌다.

이우 황손의 묘소는 경악스럽게도 어느 날 작은 공동묘지로 둔갑되었다. 10년 전에 무참하게 파헤쳐지며 현대판 부관참시 화장을 당했고, 그 근처에 있던 고위 황족들도 같은 운명이 되어 유골 집합소 같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이우 황손의 묘소에다가 여러 황족의 공동 유골 매장지를 만들었던 것이다.(안천, 특급전범 천황을 고발한다: 대한황실문화정책사, 2014, p.287 참조)

그리고 그 묘소들에서 파헤쳐진 여러 비석들은, 느닷없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고 말았다. 골동품상에 팔리지 않아 천만 다행일 정도이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그토록 중요한 대한황실 문화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손들은 그들만의 독단적 생각에 따라, 그냥 사후 화장을 하고 유골들만 한 곳에다 모아 놓은 것이다. 도대체 아무리 대한황실이 몰락했다고 하더라도, 이 지경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된 그 비석들은, 처음에는 앞마당에 쭉 세워진 진열품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의 서울역사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경희궁을 모독하는 잘못된 존재가 분명하다. 어떻게 대한황실 황궁 정문 옛터에다 그런 해괴한 창고 모습의 가건물을 지었는지를 탓하는 비판이 많은데, 그 앞에다 비석들을 포로들 세우듯 세워놓았었다.

대한황실 최고위 황족의 비석들이 이렇게 참담하게 전시품으로 전락된 것이다. 대한황실사를 제대로 안다면 장탄식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악할 일이 돌발한 것이다. 더구나 이우 황손의 묵언 공백 신도비는 아무 글자도 없어서 그랬는지, 어느 날 느닷없이 박물관 맨 뒤 구석 후미진 곳으로 옮겨져 버렸다.

그래서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상한 신도비로 전락되었다. 왜적을 말없이 단호하게 꾸짖는 공백 신도비라는 유일 희소성에 덧붙여, 항일전쟁기 최고의 역사성을 갖는 대표 황족의 특별 유품이 이렇게 무참히 내몰리고 말았다. 아마도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최고의 뜻 깊은 보물일 텐데도, 그런 천대와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항일전쟁기의 최고 위상을 갖는 황족의, 무언의 말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 비석은 말이 없기에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그 말 없는 말은 항일전쟁사를 생생히 상징하는 가장 뜻 깊은 징표가 분명하다. 아니 대한황실의 영광을 다시 찾아 달라는 무언의 절규라고 해석된다. 대한황실을 되살리려고 끝없이 발버둥 쳤던, 이우 황손의 숭고한 꿈이 이렇게 외면될 수 있는가? 도대체 공공 박물관의 식견이 이 정도인가?

어떻게 박물관 뒤 구석에 내몰려 처박힌 듯 참혹한 신세가 되었는가?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렇게 대한황실을 천대하고 모독하려면 즉시 비석들을 반환해야 옳다. 이토록 역사의식이 박약한 곳에서, 이처럼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곳에서 어찌 소장할 수 있는가?

경기도 마석의 대원군 묘소와 함께, 이우 황손 묘소는 즉시 원래대로의 최고위 황실 사적지로 재탄생되어야 마땅하다. 그 경역에 함께 모셔져 있던 여러 대한황실 황족 묘소들을 포함한 이 두 분의 묘소는, 항일전쟁시대를 생각한다면 사실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임금님 릉들 보다도 더 역사적 의미가 큰데도 이 지경이 되었다. 아무리 대한황실이 참담한 상태에 처해 있기로서니,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문화재청이나 경기도는 이 참상을 알고나 있는가? 도대체 마지막 광무 임금님, 융희임금님이 태어나신 잠저 터 운현궁을 배경으로, 항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재기할 것을 꿈꾸면서 용틀임하던 운현궁 황실묘역이 공중 분해되어 박물관 뒤 구석으로 내몰리다니?

세계문화유산인 동구릉, 홍유릉 이상으로 중요한, 대한황실 운현궁 묘역 유적지는 항일전쟁 마무리 차원에서 철저히 재정비 되어야 하겠다. 마석 운현궁 묘역은 대한황실 독립전쟁 묘역으로 재탄생됨이 필수적이다. 운현궁 황실묘역은 결코 특정 황실 후손들의 개인 소유가 아니다. 역사도 조상도 저버리고서, 아무렇게나 훼손하고 아무데나 기증할 사유물이 아니다. 최고 국가보물 자산이다. 국민 전체의 역사요, 민족 전체의 사랑을 받을 마지막 황실 국립묘지이다.

운현궁 황실묘역은 최근에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전북 전주의 경기전만큼 의미 있는 특급 보물단지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니, 최고 보물이 서울역사박물관 뒤 구석에 내몰리는 충격적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전주의 경기전은 그 하나로도 현재 지방재정을 든든히 받쳐주는 달러박스이다. 국민적 관심이 나날이 높아짐은 물론이고, 국제 관광지로도 점차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단지 경기전 입장객에게 1천원을 받는데도 작년도 입장료 수입이 7억 원이었다.

마석 운현궁 묘역도 결코 경기전에 뒤지지 않을 보물덩이 달러박스가 확실하다. 운현궁 황실묘역의 역사적 가치는, 마석을 전주 같이 성공한 관광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고도 남음이 크다. 그런데도 무참히 파헤쳐졌고 무작정 기증해버렸다. 더구나 기증받은 곳에서는 창피한 유물인 듯, 박물관 뒤 구석에 숨기 듯 내몰아 버렸다.

흡사 쓰레기 문화재로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는 오해가 생길 정도이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눈으로 확인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고의 항일애국 황손이 역사의 뒤안길로 내버려져서 망각되며 전락된 참상이요, 정통 운현궁이 조롱거리 신세가 된 것 같이 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서울역사박물관 터는 마지막 대한황통의 직계조상인 효종부터 철종까지 장기간에 걸쳐 중심 궁궐이었다. 그렇게 중차대한 경희궁 궁궐인지라 왜놈들이 작심하고 훼손하며 짓밟아,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만들었던 추잡한 만행의 황궁파괴 현장이다.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동물들이 뛰놀게 만들고, 경희궁을 왜놈 중학생들이 뛰며 짓밟게 만든 침략만행은 정신대 성노예 만행을 능가하는 침략 전쟁범죄이다.

그런데 참담하게도 왜구 침략후유증이 현대시대까지 이어지며, 만행의 확대 재생산이 자행되고 있다. 흡사 일본 침략 후유증으로 우리나라가 남북분단이 되며 6.25전쟁 등 기나긴 생지옥 고통을 겪고 있듯이, 경희궁도 온갖 상처투성이에다 골병이 든 중환자 같이 중증질환을 앓고 있다. 왜놈들은 물러갔어도 결코 이 땅에 완전한 봄은 오지 않은 것이다. 곳곳에서 중증 후유증을 앓고 있을 뿐이다.

존엄한 경희궁 정문 터를 서울역사박물관이 강점하고 있는 것은, 일본 왜적들 분탕질의 제2차적 만행이 확실하다. 더구나 운현궁 국보급 문화재가 그 터에서 조롱당하고 천대를 받는 참극은 왜놈들 침탈 후유증의 제3차적 만행이 아니라고 어찌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운현궁 대한황통은 영조, 정조 임금님 직계 혈통이 핵심줄기 이다. 그런데도 경희궁 정문 터에서 직계 최고 후손인 이우 황손과 직계 운현궁 황통을 천대하며 모독하고 있다니 할 말이 없다. 이러고도 왜적 총리 아베의 천박한 망언망동에 헛된 흥분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귀중 문화재들이 처한 오늘의 참상을 어린 후손들이 알세라 겁난다.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방문하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우 황손과 대한황실에 대한 역사적 긍지를 찾을 수 없다면 그 박물관은 존재가치도 없지 않을까? 자랑스러운 경희궁을 짓밟고 경성중학교를 세웠던 왜적들의 만행이, 오늘까지도 그 터에서 잔존해야 하는가? 어떻게 이토록 역사의식도 망가지고, 어떻게 이토록 참담한 문화실조 상태의 나라로 전락되고 말았는가? 어떻게 이토록 왜놈들이 망쳐 놓은 그대로 살고 있는가?

경희궁을 건강했던 옛 모습으로 완전하게 복구하고, 왜적들이 끊어 놓은 황통을 당당하게 재건하며, 항일전쟁의 마무리 작업으로 임금님을 다시 모시는 영광의 날은 아직도 요원할 뿐인가? 우리들이 아직도 그렇게 한심하니까 아베 왜국총리가 그렇게 뻔뻔하고, 전범집단 자민당이 죄의식도 없으며, 자민당의 관제조직 재특회가 100년 전 같이 날뛰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들은 참담한 추친일파 나라 그대로이다. 아직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왜놈들 침탈 찌꺼기 문화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경희궁의 중증질환 상태가 전혀 국가적 문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왜구 침탈에 만신창이가 된 경희궁 궁궐터를 찾는 뜻있는 인사들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인 까닭이 아직도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이우 황손의 신도비가 밝은 태양을 다시 찾을 날을 간곡하게 기다린다. 항일전쟁의 마무리 차원에서 이우 황손의 항일애국 역사가 강력히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천대받는 신도비는 원래의 경기도 마석 운현궁 황실묘역으로 즉시 옮겨져야 하겠다. 영광의 신도비로 재탄생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운현궁 황실묘역 성역화에 땀 흘리는 경기도지사의 뜻 깊은 소식을 어서어서 듣고 싶다.]

[! 황성 옛터의 처절한 몰락상이여! 아 처연한 경희궁 궁궐 정문 터의 흡사 창고 같은 서울역사박물관이여! 그 뒤꼍에 처박혀 천대받는 최고위 대표 대한황족의, 국보급 문화재의 부끄러움이여! 어찌 아베 왜국총리의 오만 방자함을 꾸짖을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있는 후손일 것인가? 서울시장이 이 참상을 알고나 있는가? 유구무언, 유구무언일 뿐이로소이다.]


* 안천(서울교육대학교 한국학교육연구원장)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30&doc_num=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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