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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천칼럼31 "한국 제1호 교회 ‘새문안교회"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3-03-12 09:45:28 조회수  1240

한국 제1호 교회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이다. 광무황제 24년인 1887년에 세워졌으니까 약 13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서, 조선시대 말기에 세워진 교회이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이 해에 미국으로 부임해서, 한미 외교관계가 정식으로 시작된 때에 세워졌다.

새문안교회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는 1859년에 런던에서 태어나서, 1872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후 뉴욕대학 신학교를 졸업하고 1884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뽑혔다. 그리하여 1885년 4월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셀러와 함께 인천에 상륙하였다.

언더우드는 선교사로 조선왕국에 부임하였으나, 결코 낯선 이역만리 타지에서 쉽게 선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선교활동을 위해 황해도의 유력인사 서경조를 찾게 된다.

서경조는 원래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하였다. 압록강 가에 위치한 의주는, 당시 청나라로부터 해외문물이 유입되는 가장 개화된 도시였다. 그의 형 서상륜은 일찍이 만주땅에 가서 세례를 받았고, 귀국하여서는 전도활동을 했다. 그러므로 서상륜이 예배를 본 곳은 사실상 한국 최초의 교회라고 하겠다. 그러나 당시 국법을 어기고 예배를 본 것이 관청에 알려져 황해도로 도피한다. 서경조도 형을 도와 전교를 하다가, 황해도 장연군 송천으로 형과 함께 이사를 했다. 당시 서경조는 대외무역을 활발히 하여 재력을 확고하게 갖춘 거상(巨商)이 되어 있었다.

언더우드가 선교사로서의 활동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주목한 사람이 서경조이다. 서경조는 해외문물에 눈을 뜨고 개화사상을 가진 재력가였으므로, 서경조의 집을 찾아 간 것이다. 언더우드는 초기에는 서경조의 사랑방에서 계속하여 기거하며 선교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경조의 사랑방이 있는 사랑채 건물이 한국교회의 시원적 교회가 된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따서 소래교회라고 불렀다.

그 후 언더우드는 서울로 옮겨서 서경조와 함께 새문안교회를 만들었으니, 오늘날 새문안교회를 한국 최초의 교회라고 일컫는 역사가 된다. 오늘날 새문안교회는 언더우드가 세운 교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한국 최초의 교회는 서상륜, 서경조가 세웠던 의주의 교회이고, 다음으로 황해도 장연의 소래교회가 두 번째이다. 그 후 언더우드와 서경조 등이 서울에도 교회를 세울 결심을 하고서 새문안교회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없던 때라 서경조의 역사는 쓰지 않고, 언더우드의 역사만 기록에 남겨 놓았다. 그래서 미국인 선교사가 최초의 교회를 세운 것이 되었고, 새문안교회가 최초의 한국 교회가 된 것이다. 생각하면 소래교회와 새문안교회는 사실상 일심동체 같은 교회이다. 현재의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으니 옛 교회는 벌써 사라졌을 텐데, 여건이 가능하다면 소래교회 옛터에 신식 첨단 교회를 새로 지어 줄 마음도 있을 듯하다.

황해도 장연 앞의 바다가 몽금포이고, 그 끝이 장산곶이다. 그 몽금포 앞 바다가 유명한 인당수로서 효녀 심청이 몸을 던져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곳이다. 그 건너에 백령도가 있는데, 백령도에는 현재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초기 교회가 존재한다. 초기의 한국 교회 역사 정리가 불분명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으나, 백령도에 거의 최초 수준의 오래된 교회가 있음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백령도는 서양문물이 선박을 통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또 가까이에 황해도 장연이 있음을 유의해야 하겠다. 비행기가 없이 선박을 많이 이용하던 100여 년 전에는 백령도가 교통의 요지였고, 그 건너 중심지인 장연이 크게 번창하며 효녀 심청전 설화가 탄생할 필요충분조건이 확실하다.

새문안교회는 원래 현재의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정동에서 출발한다. 그러다가 한두 번 이사를 하며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새문안교회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왜냐하면 새문안교회는 예전의 원형이 계속 사라졌다. 초기의 모습이 그대로 존재하며 교회가 발전을 해야 했으나, 계속 허물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의 새문안교회 건물은 1972년에 세워졌다. 그런데 그 건물을 설계한 인물이, 대한황실의 정통 맥을 잇는 이구 황태손이라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새문안교회는 현존하는 대한황실 역사 유적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중대한 건물이다. 현재의 본당 건물은 개신교가 우리민족을 사랑한 전통을 이어 받아, 이구 황태손의 작품으로 건축되었다고 해석된다. 한국 땅에 교회는 많아도, 대한황실 황태손이 설계한 유일한 교회가 현존하는 새문안교회 건물이다. 서양식에 한국 전통미가 돋보이는 건축 예술품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도 40여년 된 그 훌륭한 건축예술품을 헐고, 새로 현대식 고층빌딩 교회를 짓는다는 충격적인 놀라운 소식이 들린다. 흡사 우리나라 곳곳에서 약 20여년만 지나면 아파트를 재건축하여 웃돈을 얹어 부동산 재테크를 하듯, 충격적 소식이라고 말들을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이 아주 짧은 일이라 하겠다. 일반 보통 건물도 그런 경우에 비난을 받는데, 현재의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본당 건물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리고 고층빌딩은 다른 장소에다 지으면 된다. 교회 건물도 신구 조화가 있는 것이고, 역사가 있는 것이다.

기나긴 역사가 있는 한국 최초의 교회를, 새로 세워지는 신흥교회와 같이 새로 짓기만 한다고 좋은 일은 아니다. 다른 교회들은 새문안교회와 같은 당당한 역사가 없는 열등의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그래서 그 자격지심으로 흡사 졸부들 같이 대형건물을 경쟁적으로 짓는 것인데, 그에 대한 세인의 여론은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새문안교회와 같이 역사성 높고 뼈대 있는 교회가 기업형 신흥교회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훗날 크게 후회할 일이 분명하다.

현재의 새문안교회는 현재 그대로의 상태에서, 이미 최고의 국가 문화자산이다. 최초의 제1호 교회인데다가, 마지막 임금님 황통을 잇는 분의 우수한 건축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어떤 교회가 대한황실의 황태자, 황태손의 작품으로 지어져 있는가?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일인데, 황해도 장연의 옛 교회는 이북 공산체제에서 제대로 존재할 리가 없다고 보인다. 그런데 백령도의 교회도 약 20년 전에는 역사성 높은 초기 교회의 아담하며 고졸한 모습을 순수하게 그대로 갖고 있었다. 흡사 수줍고 예쁜 시골 처녀 같은 교회였다. 너무나 정감이 넘치는 멋진 문화재였지만, 현재는 그 문화재를 무참하게 헐고서 평범한 시골 교회로 다시 지었으니 너무나 할 말이 없다. 옛 모습을 아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실망하며 개탄을 크게 한다.

현재의 백령도 교회에는 한국 최고령 고목나무 무궁화가 존재하고 있어서 유명할 뿐이고, 그 뜻 깊은 문화재 교회건물은 덧없이 사라졌다. 우리나라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조선 말기의 원초적 모습을 띤, 그 예쁜 문화재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덧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왜 그 교회에 무궁화 천연기념물이 자라고 있는가? 그 자랑스러운 무궁화에서 백령도 교회를 지은 초창기의 애국적 독립정신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백령도 교회는 새문안교회의 시원적 성지와도 같은 곳인데, 그 무궁화나무가 의연하게 초기 교회의 설립의지를 웅변하고 있다. 새문안교회도 문화재를 지키려는 단호한 뜻이 있어야, 훗날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기존의 문화재를 허물어 없애기는 아주 쉽다. 하지만 그 문화재를 허물고 나면 영원히 못 찾는다. 새문안교회를 다시 지으면 무궁화라도 남을 것이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렇게 교회를 마구 허무는 나쁜 관행이 왜 생겼을까? 그것은 생각하되 일제탄압의 후유증이라고 보인다. 일제 식민시대에 일제에 영합했던 천주교는 좋은 장소에다 좋은 대우를 받았다면, 미국 교회였던 개신교는 한국인들을 돕는 독립운동을 하여 일제에 푸대접을 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안천, 대한황실문화정책사: 특급전범 천황을 고발한다, 교육과학사, 2011, P.367~참조)

그런 연유로 나쁜 장소에다 허름한 교회에서 출발하게 되니까, 교회를 마구 허물며 다시 짓는 악습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한다. 교회 건물도 역사가 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있다. 교회 문화재를 아끼는 교회 문화가 정립되어야 하겠다. 130여 년 전에 최초로 미국 교회가 전래 되었다고 하는데, 130여 년 된 건물은 한국에 없다. 현재의 40여 년 된 문화재가 가장 대표적인 교회 역사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회를 대표하는 그 보물이 사라지며 다시 재건축 된다면, 문화적 가치는 전혀 없는 한낱 부동산 건물에 불과하게 된다.

 

「새문안교회를 헐고서 새로 신축한다는 생각은, 역사의식이 없는 너무도 잘못된 결정이다. 문화가 실조된 재건축 풍조는 확실히 재고되어야 옳다.」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30&doc_num=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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