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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25 전쟁은 민족의 최대 비극이며 지금도 진행 중 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작성일  2014-04-03 23:46:43 조회수  337


민족의 아픈역사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3주년 되는 날 입니다.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날이죠.

 

하지만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역사적 배경과 시기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젊은 세대들의 기억 속에 6.25 전쟁은 교과서 속의 전쟁 이야기로 흐릿하게 기억될 뿐.. 세월이 흘러가는 만큼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역사를 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겠죠? 오늘은 6.25 전쟁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부터 1953년 7월 27일 까지 3년 1개월간 지속된 한국전쟁으로,

일제 해방 후 5년 만에 일어났으며 민족의 분열과 대립의 심화, 분단체제를 확립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일제에서 해방된 후 이승만 정권은 초기부터 좌익과 우익세력의 반대로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었습니다.

미국정이 유지시킨 친일세력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에 민족국가로서의 명분이 부족했고,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족 행위 특별조사위를 이승만 정권이 탄압을 했습니다.

또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군부의 반란과 민중들의 저항이 한층 지열했으며,

반란군들이 산악지대로 들어가 유격대가 되어 유격전을 펼치는 등 극심한 정치적 상황, 경제적 불안의 형국이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북한은 통치체제를 빠르게 안정시키고, 남한 해방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급기야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경 38선 여러지역에서 북한의 공세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6.25전쟁의 경과

 

6.25 전쟁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제 1단계 북한의 승세 기간

 

북한 인민군이 4일만에 서울을 점령, 3개월 만에 대구, 부산 등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북한 인민군은 점령지역에서 당과 인민위원회를 열고 토지개혁 등의 개혁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미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국제 연합군이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했고, 이로써 전쟁은 국제전화 되었습니다.

당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는 소련이 중국문제로 불참중 이었기에 거부권 행사 없이 미국의 안이 그대로 통과되었습니다.

 

- 제 2단계 인천상륙작전

 

미군을 주로 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 (1950년 9월 15일) 해, 13일 만에 서울을 탈환 (9월 28일) 하고 38도선을 넘어 평양을 점렴 (10월 13일) 했으며,

한국군 일부가 압록강 근처 초산까지 진격 (10월 26일) 을 한 시기입니다.

전쟁의 고비는 38도선 이북으로의 진격문제에 있었습니다.

이승만과 미국은 북진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38도선을 넘었고, 미국의 영향하에 있던 유엔은 총회에서 38도선 이북 진격을 승인.

한국통일부흥위원단 (UNCURK) 를 설치했습니다.

 

- 제 3단계 중공군의 개입시기

 

유엔군의 북진에 위협을 느낀 중공군의 개입 (10월 25일) 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한국군이 오산 부근까지 후퇴했다가 다시 38도선을 넘어서 (1951년 3월 24일) 철원, 금화 알대까지 진출 (6월 11일) 하고,

소련이 휴전을 제의 (6월 23일) 해 휴전 교섭에 들어간 시기 입니다.

중공군 개입으로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자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만주를 폭격하고 중화민국의 장개석 군을 동원해 중국 남부지방에 제 2전선을 설정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의 전쟁확대론은 세계대전으로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서,

이를 우려한 미국정부에 의해 저지되었고 맥아더 장군은 해임 (4월 11일) 되었습니다.

 

- 제 4단계 휴전 협정의 성립시기

 

소련 유엔대표의 휴전제의를 미국이 받아들여 15일 만에 개성에서 예비회담이 개최 (7월 8일) 되고, 이어서 본회의가 (7월 10일) 열렸습니다.

비무장지대 설치를 위한 군사경계선 설정, 휴전 감시기관 구성, 포로교환 등의 주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휴전 회담은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진행되었고, 우리 민족의 염원과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승만은 휴전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미국은 한미상호안전보장조약 체결, 경제원조, 한국군 증강 등의 조건으로 이승만을 무마 시켰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 인민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마침내 전쟁은 끝나고 휴전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휴전협정에 의거, 한반도 장래문제를 논의하는 정치회의가 1954년 4월 26일 제네바에서 열렸으나

아무런 성과없이 결렬, 남북 분단은 확정 되었습니다.


 

 

 

 

 

* 6.25전쟁의 결과

 

6.25 전쟁은 남북 양측에 약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국토의 피폐와 폭격으로 인한 북한지역의 피해는 극심했고, 남국의 적대감이 극도로 심화되어 민족분단의 체재가 더욱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남한은 반공사상이 전 사회를 지배할 정도가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동서냉전을 격화시키는 고비,

미·일 안전보장체제를 재촉, 일본의 재군비강화와 전쟁경기를 통한 고도성장의 기초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통일이 되면 남한에 어마어마한 경제적 희생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그 희생은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투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통일을 바라고 계시나요?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될 한반도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원문출처 : /king/default/bbs/view.php?&bbs_id=board25&doc_nu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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