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있는 정종 후릉
동구릉에서 제사 참석하신 황손

고려왕조 수도인 개경 주변에 조선왕릉이 있다?


조선왕릉은 한반도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유적으로 한 시대의 왕과 왕비의 능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는데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한국의 다른 세계유산과 함께 조선왕릉을 소개하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조선왕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은 강원도 영월의 장릉, 경기도 여주의 영릉과 녕릉 3기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도읍지인 한양에서 40km 이내에 입지하고 있으며, 왕릉이 40기, 원이 13기, 총 53기가 있다.


위의 설명으로만 본다면 조선왕릉은 3기를 제외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입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고려왕조의 수도였던 개경 주변으로 조선 초에 조성한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제릉과 정종·정안왕후의 후릉이 위치한다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신의왕후, 정종·정안왕후 개경에 잠들다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1337~1391) 한씨는 조선이 건국되기 1년 전인 1391년 사망하였다. 1392년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뒤 시호를 절비라 하고, 능호를 제릉이라 했다. 신의왕후가 안장된 제릉은 북한 보존급문화재 제55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황해북도 개풍군 대련리 부소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그 외관은 공민왕릉을 모방하였으나 일부 석물 등의 경우 더욱 뛰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묘역은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상단에는 봉분이 위치한다. 봉분은 12지 신상을 새긴 12면의 병풍석을 둘렀으며 주위로 난간석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과 난간석의 외곽으로는 남쪽을 제외하고 3면을 곡장이 둘러싸고 있다. 난간석과 곡장의 사이에는 석양·석호가 배치되어 있으며 봉분의 남쪽으로는 상석·혼유석·망주석 등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2단에는 6각의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인석과 석마가 한 쌍씩 마주하고 3단에는 무인석과 석마가 한 쌍씩 마주하고 있다. 묘역의 앞쪽으로는 정자각과 비각이 위치하는데 비각의 내부에는 북한 보존급문화재 제1624호인 제릉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제릉은 처음부터 왕비릉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었고 아들인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 왕릉의 형태로 정비한 것이다. 제릉의 정비 후 태종은 1404년(태종 4년)에 신도비를 세우고 1407년에는 석실을 조성하고 돌난간과 석인을 세웠으며 1410년에는 신도비 비각을 세우는 등 제릉의 정비에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정종(1357~1419)은 조선의 제2대 국왕으로 태조와 신의왕후의 둘째아들로 조선 건국 후 영안군에 봉해졌다. 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난 뒤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정종은 그해 9월 5일 태조의 선위로 국왕이 되었으나 1400년 11월 11일 태종 정안군에게 선위한 뒤 개성의 인덕궁에 머물다 1419년 사망했다. 세종은 온인공용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란 시호를 올리고 능호를 후릉이라 했다. 정안왕후(1355~1412)는 정종이 상왕이 되자 순덕왕대비란 존호를 받았으며, 1412년 같은 해 8월 8일에 후릉에 장사지냈다.


후릉은 조선 제2대 왕 정종과 정종의 비 정안왕후의 쌍릉으로 북한 보존급문화재 제5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황해북도 개풍군 영정리 백마산 기슭에 위치한다. 능은 정종과 정안왕후 각각의 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난간석으로 연결되어 있다. 봉분에는 12지 신상이 조각된 12면의 병풍석이 둘러져 있으며 제릉과 동일하게 문인석·무인석·석마·장명등·상석·혼유석 등의 석물이 자리하고 있다. 후릉 역시 공민왕릉을 상당 부분 모방하였으며 사적 제194호인 헌릉과 유사한 모습을 가진다.


초기 6년간, 조선의 수도는 개경


제릉과 후릉과 같이 조선에 의해 망한 고려왕조의 수도인 개경 주변으로 조선왕릉이 위치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종은 새로운 도읍인 한양에서 1차 왕자의 난이라는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경험한 뒤 조선의 제2대 왕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태조에게 양위를 받은 뒤 개경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후일 태종이 되는 동생 정안군에게 양위한 뒤에도 줄곧 개경에 머물렀다. 고려의 수도 개경이 정종과 태종 재위기간인 1399년부터 1405까지 동안 조선의 수도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비록 후릉이 조성될 당시 조선의 수도는 한양이었지만 정종 재위 당시의 수도가 개경이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이 개경 주변에 위치하는 것은 그다지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신의왕후가 사망했을 무렵에는 태조가 아직 조선을 건국하기 전이었으므로 당시의 수도인 개경 인근에 능을 조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신의왕후, 정종과 정안왕후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왕족이 되었다. 즉 태어날 당시에는 고려의 백성이었던 것이다. 비록 왕족이 되었으나 오랜 기간 동안 고려사람, 개경인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500년 수도인 개경은 새롭게 만들어진, 형제들의 피가 뿌려진 한양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2009년 이루어진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는 조선시대 왕실문화의 정수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 개성에 위치한 제릉과 후릉에 대한 추가 등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쪽 모서리가 빈 등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