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태어나 韓·美·日 유랑…영친왕궁터 호텔서 쓸쓸히 숨 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씨가 지난 16일 자신이 태어난 터인 일본 도쿄

(東京)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나라 잃은 황실 후손들

의 기구한 운명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문화일보 19일 27면 참조

이구씨의 죽음으로 조선왕조의 적통(嫡統)은 끊어진 셈이며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

으로 고치고 황제로 즉위했던 고종의 후손으 론 의친왕의 후손들만 남게 됐다.

고종황제는 9남4녀를 두었지만 장성해 혼인까지 한 자식은 명성 황후 민씨와의 사이

에서 낳은 2남 순종황제 척(拓)과 귀인 장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5남 의친왕(義親王)

강(堈), 순헌황귀비 엄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7남 영친왕(英親王) 은(垠), 귀인 양씨와

의 사이에서 낳은 막내딸 덕혜옹주 등 4명뿐이었다.

이 중 고종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후사가 없었던 순종이 즉위한 1907년 의민(懿愍) 황태자로 책봉된 영친왕과 의친왕, 덕혜옹주 및 그의 후손들은 자신들 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근대사의 굴곡을 최일선에서 겪어야 했다.
태어난 직후 귀인 장씨와 함께 명성황후 민씨에 의해 내쳐졌다가15세 때인 1891년 환궁해 의화군(義和君)에 봉해진 의친왕은 그래도 2년 뒤 인목대비의 아버지였던 김제남의 후손인 연안 김씨와 결혼할 수 있었지만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내선일체를 앞세운
일제의 결혼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당시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육사 등지에서 교육을 받은 영친왕은 1920년 메이지(明治)천황의 조카였던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의 딸 마사코(方子)와 결혼했으며 1926년 순종이 승하한 뒤 ‘이왕(李王)’으
로 불리게 된다. 영친왕은 이방자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진(晋) 과 구(玖)를 두었지만 첫째 아들 진은 생후 8개월 만에 죽어 이구씨가 사실상 마지막 황세손이 됐다.
일본 왕실학교인 가쿠슈인(學習院) 고등과를 마친 뒤 1950년 미 국으로 유학을 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미국인 줄리 아씨와 결혼한 이구씨는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혼과 잇따른 사업실패 등을 겪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심하게 겪었던 것으
로 보인다.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는 “한국 근대사의 굴절이 마지막 황세손이었던 이구씨의 삶에 투영돼 있다”고 말했다.
덕혜옹주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13세 때인 1925년 황족은 일본 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일본에 간 덕혜옹주는 이국생활 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시달렸으며 1931년 쓰시마(對馬 島) 번주(藩主)의 후손인 소 다케시(宗武志) 백작과 정략결혼했 으나 이혼했다. 유일한 혈육인 딸 마사에(正惠)마저 결혼에 실패한뒤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 병원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던 덕혜옹 주는 낙선재에 칩거하며 외로운 생을 마쳤다.
순종이 승하한 뒤 나이가 가장 많고 기질도 호방해 일제의 견제 를 많이 받았던 의친왕은 당시 일반인들에겐 술과 여자나 좋아한왕자로 알려졌지만 최근 들어 독립운동에 관여한 흔적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