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네살, 일본으로의 강제유학 그리고 독살의 공포

3.1 운동후

1920년대 동아. 조선일보에는

덕혜옹주에 대한 기사가 자주 실렸다.

식민지 백성들에게 덕혜옹주는 민족의 우상이요,

죽은 임금 대신 상징적 존재로 관심을 받았다.

1921년.

덕혜옹주는 조선내에 일본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일출소학교에 입학하여 일본식 교육을 받는다.

<일출소학교에서 일본 교육을 받는 덕혜옹주- 가운데>

그리고 1925년 마침내 고종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다.

일본이 덕혜옹주에게 일본으로의 유학을 명령한 것이다.

14살의 덕혜옹주는 기모노 차림으로 일본을 가게 된다.

"고종황제의 만년 총애를 받던 덕혜옹주는 멀리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 <순종실록초록>

덕혜는 일본에서 오빠 영친왕의 집에 살게 된다.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는 예전과 너무도 달라진 덕혜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나를 매료시켰던 생기발랄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말로 인사했으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한국말로 "먼 여행 오시느라 피곤하신가봐요?" 했으나

옹주는 미소조차 띄지 않았다."

                                               - 영친왕 아내 이방자(마사코) <지나온 세월> 중에서

덕혜를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의도에

14살 소녀는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덕혜는

일본 천황가와 화족 자제들이 다니는 <여자학습원>에 입학한다.

"덕혜옹주는 오전 6시에 기상하여 7시에서 2시까지 수업을 받고

여가에는 불란서 교육을 받으며 틈틈이 동요도 즐기신다더라."

                                                       - <1925. 5. 13 조선일보>

일본에서의 덕혜옹주의 학교 생활을 증언하는

일본 동창생들의 증언을 일본 향토사학자가 기록한 것이 발견되었다.

"덕혜옹주는 매일 마호병(보온병)을 들고 학교에 왔습니다.

'왜 보온병을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독혜옹주는 독살당하지 않으려고

보온병의 물만 마신다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당신 입장이라면 독립운동에 나섰을 텐데

당신은 왜 여기에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덕혜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늘상 입을 다물고 있는 아이였어요."

           - 일본 의회정치의 아버지, 오자키 유키오의 딸 소마 유키카(96세)

           <일본 여자학습원 동창생들의 증언 기록물>

아버지 고종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던 덕혜는

하루 아침에 갑작기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을 뒤로 하고

자신도 언제 독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무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일본에서

망한 나라의 공주에 대한 냉소와 감시를 견디며

14살의 어린 소녀 덕혜옹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자책감,

그리고 처절한 외로움과 싸워야만 했다.

1929년 덕혜 나이 19세.

일본 생활 5년째였다.

생모 양귀인이 유방암으로 사망한다.

"옹주는 검은 양장에 애통에 야위신 몸을 감싸시고

창덕궁에 들어가셔서 이전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잠깐 쉬신 후

낙선재에 대비 전하를 뵈알하고 1시에 거행하는 성복전에 참여하시었다."

                                                                  - <1929. 6. 3 동아일보>

"어머님 유해앞에 비상히 애통하시는 모양은

각가히 모시는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냇더라."

                             - <1929. 6. 3 동아일보>

조선의 전통으로 하면 덕혜는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일제는 덕혜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3년전 <왕공가궤범(1926)>을 제정했고,

193조를 들어 '덕혜는 상복을 입을 수 없다'고 했다.

덕혜는 바로 3년상이 끝난 후 입는 천담복을 입어야 했다.

초상을 치루고 온 덕혜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가을 학기가 시작했으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종일 누워있고 먹지도 않고

때로 밤에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

뒷문으로 해서 오카사카 방면으로 걸어가고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조발성치매증(정신분열증)이라고 했습니다."

                                         - 이방자 여사 <지나온 세월> 중에서  

정신분열증은 사춘기에 많이 발병한다고 하는데

최근 학계에서는 성장 시기 가족 관계가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아버지 고종이 독살당한 후 일본으로의 강제유학,

어머니 양귀인,

오라비 순종의 사망.

그리고 정략결혼까지.

덕혜에게는

일본의 강압과 가혹한 운명에

저항할 그 어떤 수단도 없었다.

그저 속으로 고통을 삭히는 것 밖에는...

어린 덕혜는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앞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영혼만이라도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거 아니었을까?

3. 스무살, 일본 남자와의 정략결혼. 그 후 고국에서 잊혀 지다.  

1930년.

일본 궁내성은 덕혜의 결혼을 결정한다. 

일본인의 아내로 삼아 이씨 왕가, 조선의 흔적을 지우려 한 것이다.

남편감은

쓰시마 36대 도주

도쿄대에 다니는

24세의 소오 타케유키 백작이었다.

"덕혜의 정략결혼을 결정한 사람들은

이런 저런 사정을 고려했을 겁니다.

이 두 사람을 결혼시키면 별 탈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죠."

                            - 나가도메 히사에(쓰시마 향토사학자)

1931년 5월 8일.

결혼식은 순일본식으로 치뤄졌고

조선 민중의 꽃 덕혜는 일본인의 아내가 되었다.

"덕혜옹주는 양장을 입으시고

자동차로 소오 백작 집을 들러

11시부터 순일본식으로 초례를 지내셨다."

                          - <1931. 5. 9 동아일보>

두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선 거의 전하는 바가 없다.

소오 타케유키는 졸업후 영문학자가 되었고

그는 밖깥 세상과 교류를 끊었다.

1933년 <황실황족성감>은

일본 백작들에 대한 기록으로

젊은 덕혜부부의 편린을 볼 수 엿볼 수 있다.

"덕혜옹주님이 1932년 8월 14일 귀여운 따님을 출산하시다.

이름은 마사에(正惠)였다."

<덕혜옹주의 딸 - 마사에,

아버지 소오 백작이 덕혜를 버린 다음해,

1956년.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행방불명되었다.>

<덕혜옹주와 일본인 남편 쓰시마 36대 도주, 소오 다케유키 백작>

1945년 일본은 패망했다.

1947년 5월 3일 일본국 신헌법이 실시되어

화족제가 폐지되면서

소오 백작은 지위와 재산을 잃고 평민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화족제 폐지와 더불어 이혼 금지도 사라졌다.

남편 소오 백작은 덕혜를 도쿄 도립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